이웃집에 신이 산다 | 오, 마이, 갓! 21세기 新신약성서!

     

    영화를 검색하면 이 포스터가 공식처럼 뜬다. 체크무늬 가운, 삼선 슬리퍼. 그래, 바로 이 남자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망할 신"이라 중얼거리게 만든다.

     

     

    영화를 보게 되면 이 포스터로 마음이 기우는 것은 당연한 일. 오랜만에 발칙적이면서, 독창적인 상상력이 난무하는 영화를 만났다. 게다가 철학과 종교와 코미디와 판타지가 하나의 가정을 이룬 듯한 느낌. 
     
     
    위대한 신이라고 해도, 컴퓨터 고장 나면 그저 무능력한 이웃집 아저씨가 되고 마는 거다. 
     
     
    신에게 아들인 예수가 있었고, 딸인 에아가 있었다. 인간들에게 고통을 주고 그 재미로 지내고 있는 아버지가 "신"이지만 더럽고 역겹다. 표면적으로는 아버지 때문에 비극과 고통이 내려앉은 인간 세상을 위해 21세기 버전 신약을 새로이 쓰기 위해 6명의 사도들을 찾는 여정을 떠나지만 가장 큰 목적은 "못된 아버지에 대한 복수"
     
     
     
    아담이 취향이다. 홀로 영화관에도 가고, 서점에도 간다. 물론 무언가가 창조되기 전이라 영화관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은 없고, 서점의 책도 백지다. 내가 봤을 때, 영화나 책의 투자자는 "빌어먹을 신"이고, 제작, 감독, 각본, 출연 모두 아담과 이브를 비롯한 우리네들. 우리들은 "신을 위하여" 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하여" 무언가를 창조해 내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속에서 신은 신의 이름을 걸고 인간들을 서로 싸우게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그렇다. 신은 DV남이다.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신이라니. 얼마나 발칙한 상상인가. 게다가 이 아버지가 두려운 나머지 아들 예수는 집의 예수 조각상에 깃들어 산다.
     
    완전수 12. 12명의 제자. 12개월. 12시간의 낮과 밤. 거기에 에아는 6을 더한다. (여기서 재밌는 건, 숫자가 6 이라는 거다. 666...) 
     
     
     
    1.오렐리 복음.
     
    2.장끌로드 복음.
     
    3.성도착자 복음.
     
    4.암살자 복음.
     
    5.마틴 복음.
     
    6.윌리 복음.
     
     
    에아가 6명의 사도를 만났고, 6개의 복음이 탄생하는데, 나는 그중에서 오렐리의 복음이 가장 마음에 든다. 
     
    엔딩 크레디트마저 지켜보게 하는 힘이 있는 영화다. 다만 마지막은 판타지성이 갑작스러울 정도로 짙어져서 잠시 이건 좀.... 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가 경박해지는 건 아니니까 금방 괜찮아졌다. 아마 소설 문장과도 같은 출연진들의 대사에 적응이 안 되는 사람들은 이 영화가 꽤 곤란하게 느껴지겠지만, 나는 이런 서시적, 통찰적인 스타일을 좋아하니까 그게 오히려 가산점을 주게 된다.
     
     
    1. 삶은 스케이트 링크장 같은 거야.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지.
     
    2. 오늘 밤 너를 위해서 꿈을 만들어 줄게.
     
    3. 죽으면 아무것도 없어. 천국은 여기야. (기독교적인 배경이 내내 깔리지만, 기독교를 부정하는 세계관이 보여 좋았던 대사)
     
    4. 한 가지 이상한 건 모든 기억 속에 약간의 슬픔이 있었다는 거예요.
     
    5. 내 머릿속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은 이미지들을 지우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그런 이미지들은 새하얀 벽을 더럽히려고 하죠.
     
    6. 조금 전까지 울다가 온 듯한 슬픈 눈망울.
     
    7. 날짜야, 지나가라. 날 죽음으로 인도해줘.
     
    8. 할아버지는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던 거죠.
     
    9. 잠에서 깨는 걸 두려워했고, 구속 당하는 것을 두려워했어요.
     
    10. 하루를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이렇게 부르는 대신에 1월, 2월, 3월이라고 부르기로 결정했어요. 일주일이 지났고, 우린 7개월을 함께 했죠.
     
     
    아참, 그 위대한 신이, 자신이 설정해 좋은 고통을 그대로 겪는 것도 즐거웠다. 줄을 서면 옆줄이 항상 빨리 줄어들고, 빵이 바닥에 떨어질 땐 늘 쨈을 바른 면이 바닥에 닿는 사소하지만 짜증을 유발하는 고통법도 인간 세상에서는 신도 피해 갈 수 없다. 신도 이 세상에서는 인간과 똑같이 배를 곯는다.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노숙자 무료 급식소에서 줄을 서기도 하고, 인간들에게 맞으면 고통을 느끼며 피도 흘린다. 신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도 해야 하는 법이다.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입구를 찾지 못한 신은 더 이상 신이 아니다. 인간들의 과거를 꿰뚫고, "신"이라고 박박 우기지만 결국 어떠한가. 자신이 탄 비행기가 고도를 잃어 추락할 위기에 처했을 때 인간들과 함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으며, 모든 것이 초기화되어 추락 직전에 다시 비행기가 하늘로 향했을 때 비행기 안의 사람들과 함께 안도의 숨을 내뱉었고, 자신도 모르게 가볍게 박수까지 쳤다.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으로 추방되어 그곳에서 세탁기 공장에 취직했다. 모든 세탁기의 안을 들여다보며 다시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재진행으로 막을 내렸다는 건, 어느 날 길을 지나가다가 자신이 "신"이라며 미친 소리를 하는 인간을 만날 수 있단 얘기다. 그런데 세탁기가 인간과 신의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라니 재밌지 않나? "세탁"의 의미가 이렇게 중용되다니 즐겁다. 예전에 히로스에 료코가 주인공인 일본 영화에서는 드럼 세탁기가 타임머신이었는데. 세탁기의 재조명이다. 이런 영향으로 누군가가 세탁기 안에 들어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것도 같다. 술에 취하면 주정으로 세탁기 안에 들어가는 에피소드도 재밌을 듯. 그나저나 이 영화의 감독 영화를 한 편 더 봐야겠다. 은근히 취향에 맞는 대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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