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13pro max 박살 아이폰이 떨어졌다. 액정이 깨졌다. 화면이 먹통이 되었다. 춘천 아이폰 수리비를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몇 곳이 나왔는데 그중에 리뷰가 괜찮은 아이폰 수리 폰여기어때를 방문했다. 춘천 CGV 1층에 있었다. 아이폰 13 pro max 액정 수리비 일단 기본 액정값만 51만원 정도. 아이폰 13 Pro Max 액정이라 비싸다고 했다. 어쩔 수 없군. 그런데 화면이 먹통이라 액정을 갈아봐야 추가적인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결론은 아이폰 액정 수리비 51만 플러스 알파. 자급제로 구입한지 8개월밖에 안 지나서 울며 겨자먹기로 진행했다. 일단 액정 자재가 비싸서 주문해야 해서 당일 수리는 어렵다고 했다. 금요일 저녁 6시쯤 방문했고, 토요일 오후 5시쯤 수령했다. 수령하기 ..
절망하지 마라. 설령 그대가 절망하지 않을 수밖에 없더라도 절망하지 마라.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절망의 늪으로 점점 가라앉고 있다고 생각할 무렵에는 사실 그 어떤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가 귀에 닿지 않는다. 어쩌면 스스로 절망으로 걸어들어갔는지도 모른다. 작정하고 가는 길이니 한 줄기 빛과도 같은 말들을 귀에 담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말뿐인 세상, 말만 그럴싸한 세상. 아무리 용기를 북돋아주는 말이라고 해도 그건 그저 글자들의 집합일 뿐이라고 외면했던 시간들. 모든 일은 마음먹기 나름이고, 모든 일은 타이밍이 중요하기에 어떤 때에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사고에 빠지느냐가 관건이다. 절망을 앞에 두고 그것을 무참히 짓밟고 일어설 수 있느냐, 아니면 그 앞에 무..
오후 햇살에 반짝이는 초록잎이, 오늘 나를 미소짓게 만들었던 일상 속 작은 행복 중의 하나였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을때 찰랑이는 초록 물결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저 너머로 나뭇잎이 움직일 때마다 빛이 작았다가 커졌다가를 반복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아무 것도 아닌 데 바라만 보는 걸로도 참 즐겁다는 생각을 했다. 선선한 바람, 흔들거리는 잎사귀들, 그 사이로 반짝반짝 빛나는 빛. 파란 하늘. 모든 것이 완벽했고, 나는 행복하였다.
강원도 춘천, 법원 앞. 엄마가 운전하는 자동차 안, 조수석에 탄 딸. 날씨가 너무 좋아서 차창 너머의 풍경은 늘 같아 새로울 것이 없지만, 기분이 매우 맑음. 그래서 신호에 걸려 자동차가 멈춘 사이에 휴대폰을 얼른 손에 들어 찰칵찰칵. 일요일 춘천의 출근길은 오가는 자동차가 평일보다 10배는 한가롭다.
스티커는 누군가가 일부러 벗긴 듯, 글자 하나가 벗겨져 있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 자세히 보니 지구를 끌어안고 있었다. 음냐, 음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을 맛보려면 지금 나는 무얼 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다만 하나 확실한 건 지금의 나는 '세상'까지는 아니더라도 '큰 걱정' 없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주 평범하게. 별 탈 없이. 이 평범하고 무탈한 일상에 감사한다. 물론 때론 마음에 격정적인 파도가 휘몰아칠 때도 있다. 사람이 어찌 맑게 갠 청정한 기운이 쏟아지는 영역에만 발을 디딜 수 있겠나. 뭐, 그런 생각으로 폴짝 징검다리를 건너듯 극복하는 게 제일이지. 깊게 고민해봐야 축나는 건 시간이고, 내 마음일 뿐이다. 어차피 극복해야 할 문제라면, 100미터 기록을 재듯이 최대한 가장 빠른 속..
사람은 쉽게 변하는 사람도 있지만, 곧 죽어도 변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아니다 싶은 사람은 끝까지 아니다 싶게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공격을 마구 퍼붓는다. 하얀 눈밭과도 같은 내 마음의 벌판에 진흙 덩어리를 마구 퍼붓는 사람을 만나면, 일순간에 나의 삶은 너저분해진다. 그 위로 다시 새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다시 본래의 하얀 벌판이 되는 데에 필요한 시간은 적게는 며칠, 길게는 해를 넘기기도 한다. 몇 번의 겨울을 맞이하며 겨우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또다시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 진흙덩이를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이 다시 찾아오는 일도 있다. 이미 알고 있다. 나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람임을. 그런데도 한 번은 더 믿어보는 것이다. 이번엔 조금 다르겠지. 조금은 ..
산책을 다녀왔다. 어린 시절 추억이 있는 춘천 어린이회관의 풍경은 언제 봐도 기분이 좋다. 카약 훈련장이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는데, 앞으로 운동 삼아 자전거 타고 자주 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엄마 차 타고 편하게 왔지만 :D) 운동하려고, 자전거도 타려고 가방도 사고, 자전거도 방출 시켰던 거 다시 뺏어왔다. 과연 몇 번이나 내가 자전거를 타고 밖에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며칠 했었는데 갑자기 '생각'만 하고 '실천'은 뒷전인 게 너무 싫어져서 매일매일 (비 오는 날, 미세먼지 수치가 보통 이상인 날 제외) 무조건 30분~ 1시간은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물론 작심삼일의 의지박약이겠지만) 체력도 기르고, 안구 정화도 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책도 읽고, 커피도 한 잔! 책 ..
어제는 산책을 조금 다른 곳으로 다녀왔다. 집에서 나가기 전에 '낭만골목'을 검색했다. 춘천에 낭만골목이 있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우리 집에서 막연하게 멀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같은 효자동이질 않은가! 길치인 나는 휴대폰 네이버 지도를 탐색했는데, 그 밑에 길 안내가 있었다. 그것도 음성 안내. 그러니까 네비처럼 길 안내를 해주는 시스템. 전에는 음성 안내를 보지 못했는데, 언제부터 생겼던 걸까. 그래서 음성 안내를 ON, 이어폰을 끼고 집을 나섰다. 솔직히 조금 시끄럽긴 했다. 안내인이 너무 떠들어서. 00길에서 우회전하십시오, 001길에서 좌회전하십시오, 50미터 앞에서 좌회전하십시오..... 그런데 휴대폰 화면을 보지 않고 길 안내를 받을 수..
한때 거창한 삶을 꿈꾸었던 날이 있었다. 남들보다 특별한 인생을 보내고 싶어 발악에 가까운 열정을 탈탈 쏟아 살다 보니 문득 이렇게 살아 무엇하나, 그런 생각이 휘몰아쳐 많이 울기도 하였다. 보잘 것 없는 인생이라도 실패한 인생은 아닐진대, 어떤 날은 꼭 나의 세계가 완전히 막을 내린 것만 같아 텅 빈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마음에 다시 무언가를 채워가는 나날들. 그 나날들이 바로 삶일 테지. 반짝반짝 빛나지 않아도, 가벼운 바람이 스치는, 구름 사이로 해가 숨었다 보였다를 반복하는 어느 오후의 흔하디흔한 풍경. 그 풍경이 바로 가장 아름답고 특별한 내 생의 일부임을 잊지 말자. 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많이 욕심부리지 말고 최대한 만족하며, 최고로 만끽하며, 그리 살자. 그리 살아가자. 계속..
"엄마, 나 이거 만들어 줘!" "뭐를?" "이거, 이거! 넘나 귀여웡! 나 갖고 싶어영!" 혀짧은 애교가 섞인 목소리를 내지르자, 엄마는 또 어떤 귀여운 걸 봤길래 그렇게 신이 났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옆으로 다가왔다. 태블릿 화면에 비친 화면을 보자마자 엄마도 그 귀여움에 바로 취했다. "엄마, 귀엽지?" "귀엽네." "이거 뜰 수 있어?" "그럼!" "요홋! 아싸! 달걀 담아서 나도 촬영 소품으로 넣어야징!" 그 대화가 끝나고 이틀 뒤,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서 지친 몸을 침대에 뉘이는 순간에 엄마가 이불 위로 무언가를 확 던지며 웃었다. 내 무릎 위의 이불에 내려앉은 그것은 바로 달걀이 쏙 들어간 흰 닭 손뜨개. "오오오오오오오오오! 완전 귀여워어어어어엉!" 나는 그렇게 한참을 품안..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순간, 집중력은 숨바꼭질을 시작한다. 어디로 꽁꽁 숨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실은 알고 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찾지 않는다. 안 보여서 찾지 못한다는 핑계를 대고 딴짓을 하는 그 순간이 정말 달달하거든. 책을 읽고 있었지만 갑자기 활자들이 춤추며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언어적 감각을 익히려고 계속해서 원서와 번역서를 번갈아가며 읽고는 있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정말 언어적 감각이 있는지 어떤지는. 그래도 꾸준함을 이길 수 있는 건 세상에 없다고 했다. 그말 하나 가슴에 묻고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지는 내가 믿는 것은 하나뿐이다. 다른 사람의 달콤한 위로에 기대지 않는다. 기대기만 하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 위를 비집고 올라서서 묵묵히 나의 길을 가야만 한다..
가끔은 그 무엇도 아닌 일에 눈물이 왈칵 터지는 때가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풍경에 괜히 눈시울이 붉어진다. 어떻게 보면 주책인, 혹은 청승인 그 눈물부림. 그저 바람에 잎사귀들이 눈앞에서 부대꼈을 뿐인데, 문득 서러워지고 마는 것이다. 산다는 것에,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견뎌야 하는 것에. 그 어떤 것들도 위로가 되지 못할 때, 스스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으려면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을 곧은 내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또박또박 반듯한 글씨로 마음 한켠에 새겨보지만, 돌아서면 또 부질없다. 외로움도 괜찮고, 공허함도 괜찮다. 다만 내가 괜찮지 않은 것은 [척] 하는 것이다. 싫지만 싫지 않은 척, 괜찮지 않지만 괜찮은 척, 울고 싶지만 그렇지 않은 척, 화가 나지만 아무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