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가장 행복했던 30분

     

    영국 작가들의 에세이 모음집. 당대 최고의 작가들이 들려주는 삶의 여러 풍경에 대해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책. 알란 알렉산더 밀른, 로버트 린드, 알프레드 조지 가디너.

    생소한 이름이겠지만 동화 "곰돌이 푸의 모험"을 기억하는가? 그 원작자가 바로 알란 알렉산더 밀른이다.

    에세이북의 제목은 늘 그러하듯이, 실려 있는 에세이들 중 한 편의 제목이다. 내 생에 가장 행복했던 30분. 나중에 사람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오면 잊지 말고 이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스쳐갔다.

    [결국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뭐든 너무 기대하지 말자." 우리는 늘 뭔가 하나를 믿어버린다. 아니면 다른 또 하나를. 마치 그것이 완벽하게 되는 열쇠 인양. 79p, 내 생에 가장 행복했던 30분, 하늘아래 출판사]

     

     

    [작심삼일.

    기원전 597만 6336년 이후, 그러니까 사람이 지구에 처음 나타난 이후, 새해에 세운 모든 각오는 여지없이 작심삼일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은 참 주목할 만하다. 아니면 우리의 각오는 자정을 알리는 시계 소리와 함께 하루살이가 되거나, 그 기쁨에 찬 종소리가 다 끝나기도 전에 색이 바래기 시작한다.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또 높게 세운 우리의 의지는 헛되이 가난한 임종을 맞는다. 황소가 되려 했던 개구리처럼. 잠시 전까지도 악물었던 턱은 부서지지 않은 채 그냥 예전으로 돌아간다. 너무 함을 주어 쥐었던 주먹은 그대로 두면 고통이 될 것이고, 한껏 들이마신 드높은 의지는 너무 오래 숨을 참아 호흡 곤란에 빠질 지경이다. 그냥 힘을 빼던가 아니면 죽던가. 대개는 자살할 것인가, 각오를 미룰 것인가의 기로에서 자연스레 새해의 각오를 팔자소관으로 돌려버린다.

    그럼에도 이상한 것은 사람들은 해가 바뀌면 또 각오를 세운다는 것이다. 끝내는 자연을 이길 듯이. 하지만 늘 그렇듯 한두 시간 동안뿐이지만. 6백 년 만의 경험이 그를 조롱한다. 그러나 새로운 신념은 경험을 개의치 않는다. 경험은 뭐가 방식을 뜯어고치려고 하는 우리를 거짓말쟁이라 부른다. 우리 역시 미래는 모르는 것이라고 경험을 비난한다. 경험 속에 있는 모든 학식은 굳어버린 과거 속에 있다고 단정 짓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한테 이렇게 말한다. 경험을 통해 미래에 대한 생각을 도출하는 것은 라틴어 교수한테 목성의 위성에 대해 가르치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경험은 수 세기 동안 인간에게 이렇게 말해왔다. 사람은 날 수 없다. 배는 바다 밑으로는 못 간다. 말이 없는 차로 수천 마일을 여행할 수는 없다고. 신념은 대답한다. 이것은 경험이 무지하다는 증거이다. 이제 경험은 축출되어야 하고 신념이 기적을 행하는 절대 권력을 가져야 한다. 사실 신념이 경험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것은 좀 지나친 말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우리의 우스꽝스럽지만 일면 당당했던 발자취의 기록을 뒤돌아보면, 신념이 경험에게서 배우려 한 적보다는 가르치려 한 적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역사는 신념의 성취의 기록이다. 신념의 기록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은 정글에 야생으로 뛰어다니는 사람만이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시대의 신념만 보더라도 사람이 새보다 빨리 날 수 있다는 오래되고 우스운 이론을 증명해 보였고, 종내는 훨씬 어렵고 방대한 것을 증명할 것이라 확신한다. 각오를 지키면. 우리 세대에 뭔가 위대한 비밀이 밝혀지더라도 나는 그렇게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실은 꽤 놀라겠지만. 어쩌면 어미 발견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 보기에 에밀 쿠가 자신의 책에서 말한 자기 암시라는 것과 위에서 말한 내용과 뭔가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쿠는 당신과 내가 수년 동안 이루려고 했던 그 의지를 조롱한다. 그는 말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고치고 싶다면 우선 의지력을 강화시키려는 시도를 그만두어야 한다. 그는 의지는 상상의 협력자가 아니고 적이라고 단언한다. 의지가 아닌 상상 그 자체가 상상을 낳는다. 성취 자체가 성취를 이룬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폭력적으로 의지력을 사용하게 되면, 쿠의 말에 따르면, 의지력은 우리에게 그것은 어렵다고 상상하게 하고, 그 어려움은 더 어렵게 된다. 우리의 의지력을 쉬게 하자. 그리고 그냥 그건 아주 쉬운 일이라고 상상해 보자. 그러면 금세 아주 분명하지는 않더라도, 전보다 분명 쉬워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쿠의 말이 맞는다면, 생각하건대, 과거 우리의 새해 각오들의 높은 사망률은 우리가 상상 대신 의지로 실천하고자 노력했던 것이 주된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럼 늘 하는 어리석은 가오를 예로 들어보자. "새해에는 담배를 끊어야지.' 각오 첫날 아침, 우리는 아침 식탁에서 일어나 눈을 부릅뜨고 담배에 반항한다. 의지는 굳고 우리의 턱은 챔피언처럼 굳세다. 시간이 흐른다. 유혹과 의지력이 가슴속에서 절망적인 전투를 벌이고, 가엾게도 덜 훈련된 의지력으로 버티는 양미간은 거듭거듭 채찍질을 당하고, 놀라고, 기절하고, 주먹질당한다. 싸움은 오래가지 못한다. 특히 의지력(대부분 아마추어 복서)과 유혹(거의 무함마드 알리) 간의 싸움에서는. 싸움은 몇 시간 정도는 지속될 수도 있다. 때로는 며칠, 잘해야 몇 주 정도. 이쯤 되면 의지력은 시쳇말로 잘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박살 나고, 멍들고, 눈멀고 귀먹어 의지력 선수는 이리저리 허우적거릴 뿐 그의 주먹은 겨냥도 못하고 맥없이 허공만 치게 된다. 이제 늘 축복받는 유혹 선수는 마지막 한 방을 날리고, 의지력 선수는 뻗어버린다. 전치 52주. 1년.

    내년이 되면 다시 그 위대한 의지력은 내가 언제 그렇게 두드려 맞고 패배한 적이 있냐는 듯이 또다시 가볍게 링에 올라 예전의 그 원수에게 달려든다. 그리고 운명이 결정지어준 대로 다시 두드려 맞고 대패한다. 당신이나 나나 알리에게는 절대로 도전하지 않을 것이다. 말이 되질 않으니. 도전한다면 단지 패배가 목적이 되겠지. 상상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 우선 이것을 인정하자. 우리가 알고 있듯이 유혹은 아주 크지만,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가늠하기에 따라 강한 적이 될 수도 있고, 약한 적이 될 수도 있다. 세상에서 제일 정복하기 힘든 전투를 치러야 하니까.

    한편 상상은, 적절한 훈련만 받는다면, 유혹을 손쉬운 상대로 생각한다. 부실한 다리에 새가슴, 좁다란 머리의 병약자, 한 방에 보내주지! 그러면 기적같이 유혹은 힘을 잃는다. 삼손이 머리카락을 잘리듯. 의지력 선수가 링에 올라 유혹 선수를 보고 소리 지른다. "응. 그래, 위대한 유혹 선수! 내가 너하고 한번 붙으려고 얼마나 별렀는 줄 아나?" 그러면 이 장면을 상상은 몰래 지켜보다가, 똑같은 상황에서 "이런 보잘것없는 녀석." 하고 몇 초 마에 K.O. 시켜버린다.

    이 말은 나 자신도 논리적으로 잘 설명이 안 된다. 그저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수년 동안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나는 살아 있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자주 담배를 끊을 수 있는 위치에 섰다. 그전 수년 동안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불가능하지만 난 해낼 거야. 내 의지를 발휘해야지. 며칠이 지나면 사투가 일어나겠지만. 하는 데까지 해보는 거야."

    나는 내 의지를 늘 이렇게 괴롭혔다. 사투는 일주나 한 달 혹은 석 달을 끈 적도 있었다. 그러나 늘 끝내는 패배하고 물러섰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하려는 일이 헤라클레스의 고난보다 더 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때 쿠의 책을 읽었다. 내게 찬란한 새벽을 열어준. 쿠는 내게 담배를 끊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상상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니라, 가장 쉬운 일'이라 생각하라고. 이 계시에 흥분되어, 좀 비정상적이고 바보 같지만 쿠의 공식에 의하면, 그렇게 자의식을 느껴야 하고, 또 누가 엿듣지 않게 하기 위해 나는 욕실로 가서 수도 곡기를 모두 틀어놓고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해 놓고서 큰소리로 말해야 했다. 물 소리보다는 작게. "나는 담배를 끊고 싶다. 나는 담배를 끊고 싶다. 나는 담배를 끊고 싶다. 나는 담배를 끊고 싶다."

    이렇게 스무 번을 말했다. 그러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예전의 사투에서 느꼈던 청춘의 힘을 빼앗긴 암사자 대신에 의기양양하고 상냥하게 버스 2층에서 콧노래를 부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이 며칠 동안 지속되었다. 때로는 아침에 일어나 공식대로 "정말 완벽하고 통쾌하게 담배를 끊어네. 어쩌고, 저쩌고." 하고 읋어댔다. 결과는 늘 좋았다. 사람들은 내게 담배를 권했지만, 나는 전혀 피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점점 기차의 흡연한 이 혐오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유혹 때문이 아니라, 퀴퀴하고 불쾌한 냄새 때문이었다. 파티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자나 여자들을 보면 왠지 동정이 갔다. 쯧쯧, 불쌍한 노예들.

    나는 오늘까지 비흡연자로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너무 바빠서 욕실로 달려가 공식을 읋을 시간이 없지만 않았다면. 운명의 날 아침, 버스를 타기 전에 신문을 사러 편의점으로 갔다. 내 큰 실수! 그 가게는 담배도 팔았는데 진짜 산처럼 높이 담배를 죽 늘어놓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크게 보이지 않았을 텐데, 오늘 나는 내 상상의 보호를 물리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너무 담배를 갈망한 나머지 내가 할 일이 뭔지 몰랐다. 담배 가게 여자가 제지하지만 않는다면 내가 해야 할 일! 나를 구해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내가 담배 가게 여자를 쳐다보며 큰 목소리로 "나는 금연을 즐긴다. 나는 금연을 즐긴다..."를 스무 번 외칠 수 있는 배짱이 있었다면, 나는 이성적으로 내가 그냥 가게를 나올 수 있다고 느끼고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 여자가 미친놈을 보는 듯한 눈총을 주건 말건.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행동을 바꾸는 것이 어지 가능하겠는가! 그 가게에는 수도꼭지도 없으니, 있다면 물을 틀고 몸을 구부리고 고양이나 뭐 동물 따위를 부르는 시늉을 하며 공식을 중얼거리면 될 텐데. 아, 이런. 거기에는 내 목소리를 숨겨줄 아무것도 없었다. 오토바이 한 대도 지나가지 않고. 그렇게 가게에 남겨진 나는 이미 스테이트 익스프레스 담배를 한 대 물고 있었다. 왜 내가 이 좋은 것을 그렇게 쉽게 끊었는지 의아해하면서.

    당신은 내 이야기가 쿠의 이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를 보여주려고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유혹으로 가득 찬 세상에는 근처에 수도꼭지가 없는 곳이 얼마든지 많으니까. 그러나 나의 금연 시도 과정을 살펴보면 이런 사실이 남는다. 성공적이었지만, 즐겁지는 않았다.

    금연에 대한 당신의 견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두 가지 마음이다. 내가 충고했듯, "상상을 이용해라.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의지로 분투하지 말라." 하지만 결국 셰익스피어도 의지가 아닌 상상으로 햄릿을 쓰지 않았는가! 그리고 햄릿을 쓰는 것보다는 담배를 끊는 게 더 쉽다. 이게 내가 찾아낸 결론이다. - 로버트 린드.82~90p, 내 생에 가장 행복했던 30분, 하늘아래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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