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목소리 (罪の声, 2020년 10월 30일 일본 개봉)
- 영화/일본영화정보
- 2021. 6. 12.
죄의 목소리
罪の声
주연 ; 오구리 슌, 호시노 겐
감독 ; 도이 노부히로
2020년 10월 30일 일본 개봉
오구리 슌 × 호시노 겐 인터뷰 : 표현자로서의 긍지에 다가서다
지금으로부터 35년도 더 된 옛날, 식품회사 6곳을 표적으로 삼아 일본을 뒤흔들었던 기업 협박 사건은 쇼와 역사상 충격적인 미해결사건으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시오타 타케시의 소설을 영화화한다는 의욕적인 기획으로 오구리 슌과 호시노 겐이 정면 대치.
이 작품은 2016년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국내부문에서 제1위를 차지하며 극찬이 쏟아졌다. 작가의 면밀한 취재와 착상이 뒤엉켜 사건의 진상이 정말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리얼리티가 넘쳤기 때문이다.
유괴, 몸값 요구, 독극물 혼입 등 갖가지 비열한 범죄를 반복하며 경찰과 언론을 도발하는 것도 모자라 최종적으로 홀연히 사진 범인 집단은 몸값을 요구하는 도구로 아이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 테이프를 실제로 사용했다. 일설에 의하면 3명의 아이들이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극장형 범죄에 "목소리"로 가담하게 된 아이들이 그 이후에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라는 의문에도 가설을 세웠다.
이 사건이 발생한 1984~1985년 당시 오구리 슌은 한살, 호시노는 3살이었기 때문에 기억에는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오구리 -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하지만 초등학생 때 '그 사건은 지금' 같은 느낌의 방송에서 가끔 특집으로 나왔던 것 같아요. 사건이 아직 공소 시효가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그걸 보고 여우눈의 남자 몽타주에 충격을 받았다고 할까, 적절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아이면서도 싫은 느낌을 주는 얼굴이라 생각한 기억은 납니다.」
「호시노 - 저도 전혀 기억에 없지만, 마찬가지로 특별 프로그램에서 본 것은 기억이 납니다. 무서웠어요. 극장형 범죄가 TV에서 화려하게 다루어져서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느낌입니다.」
영화는 타이니치 신문 문화부 기자 아쿠츠 히데시 (오구리 슌)가 시효가 지난 미해결 사건을 쫓는 사회부 특별 기획반에 들어가 취재를 거듭하는 매일을 보내는 한편, 교토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는 소네 토시야 (호시노 겐)는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다가 아버지의 유품 속에서 낡은 카세트 테이프와 수첩을 찾아낸다.
"내 목소린데..." 테이프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미제사건에서 범인들이 몸값을 주고받는데 사용한 협박 테이프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이윽고 운명에 이끌리듯 두 사람이 만나 큰 결단으로 향한다.
오구리 슌과 호시노는 TV 드라마 코우노도리에서 함께한 경험이 있지만, 영화는 첫 공동 출연이다. 이번 작품 섭외를 받았을 때, 작품이 내뿜는 매력과 함께 서로의 존재가 출연을 결심하는 큰 원동력이 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오구리 - 원작의 에너지는 물론이거니와 상대 배우가 호시노 겐 씨라고 들었기 때문에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코우노도리에서도 살짝 연출을 받았긴 했지만, 도이 노부히로 감독님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좋아해서 더 연출을 받아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덤벼들고 싶은 소재가 많았었습니다.」
「호시노 - 전에 나스다 준 프로듀서와 함께 일했을 때, 기획 얘기를 들었습니다. 줄거리를 들으면서 "소네 역할을 호시노 씨로 생각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 아쿠즈는 오구리 씨로 생각하고 있어." 라는 말에 굉장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오구리 군과는 코우노도리에서 짧게 일했었기 때문에 좀 더 연기를 해보고 싶었ㅇ어요.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정식으로 섭외를 받아서 무슨 일이 있어도 하고 싶었습니다.」
영화는 142분으로 길지만, 장황한 인상은 전혀 없고, 보는 이를 쭉쭉 이야기속으로 끌어들인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오구리 슌과 호시노 겐. 지금까지의 출연 작품에서는 보여주지 않았던 표정이 스크린에 담겼다. 팽팽히 맞선 채 대치하면서 새삼 느낀 서로의 장점(스트롱 포인트)는 무엇일까.
「오구리 - 기본적으로 흉내낼 수 없는 것 투성이입니다만, 최근에 취재를 받으면서 제가 본 호시노 겐 씨가 점점 언어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웃음) 저는 영상 작품에 출연할 때, 연기하면서 약간 알기 쉬운 리액션을 취해버릴 때가 다소 있습니다. 겐짱과 일을 해보니, 마음은 움직이고 있겠지만 그다지 표정으로 전하는 작업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도대체 이 사람이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보는 사람에게 어쩌면 전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도전을 망설이지 않는 선택하고, 거기에 뛰어들 용기를 갖고 연기를 한다는 것은 분명 장점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보는 이에게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는 연기를 하시네요.」
「호시노 - 각본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제가 여러 작품에서 보아왔던 오구리 슌의 그 어떤 것과도 다른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현장에 가보니 역시나 달랐고, 무척 신선했습니다. 화려한 역, 더티한 역, 별의별 역을 다 해온 오구리 군이 평범한 아저씨를 연기했잖아요. 본인도 굉장히 의식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모든 영역의 다양한 연기가 가능하다는 것이 역시 장점인 것 같습니다.」
오구리 슌이 숨결을 불어넣은 아쿠츠는 사회부 소속이었지만, 사건 기자로서의 기본 방향에 의문을 품고 멈춰선다. 그리고 특집팀 취대로 진상에 다가가는 가운데 상사, 선배, 스스로에게 "이제 와서 갈아엎을 가치"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는 질문을 계속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관객은 아쿠츠의 시선으로 사건을 따라가게 된다.
「오구리 - 아쿠츠는 원작자 시오타 씨가 신문기자 시절에 여러가지를 경험하면서 만든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시오타 씨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굉장히 열정적인 분이고, 매우 밝으세요. 유쾌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런 가벼움 같은 걸 아쿠츠에게 조금씩 스며들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연기했습니다.」
한편, 호시노가 연기한 소네는 우연히 발견한 카세트테이프를 재생해버림으로써 어린 시절 자신의 목소리가 35년 전 사건에서 사용된 녹음테이프의 목소리와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진상을 알게 되는 것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진실을 추구한다.
「호시노 - 제가 펼쳐내고 싶었던 건 평범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휘말려서, 어찌해야 하면 좋을지 모르면서도 아무래도 끌려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숨긴다는 선택지도 있었겠지만, 몸이 움직이게 되고 조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죠. 하지만 가족에게 폐를 끼칠 수도 있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라는 미온적인 부분을 잘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좋아, 밝혀낸다!' 같은 정의감과는 다른 방향을 제 안에서 배양한다고 할까, 활짝 펼치고 싶다는 생각으로 연기했습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아쿠츠와 소네가 함께 사건의 진상으로 향하는 가운데, 우정에 가까운 감정을 서로 품게 된다. 아쿠츠는 '기자의 긍지도 없다. 세상에 호소하고 싶은 것도 아무것도 없다.'고 토로하지만 과거를 캐내는 것의 의의에 대한 대답 찾기는, 어느덧 소네에 있어서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가 되어 간다.
그렇다면 기자의 긍지를 마주한 오구리 슌과 호시노 겐에게 표현자로서의 긍지란 어떤 것일까.
「오구리 - 이런 작품에 참여할 수 있는 모종의 문제 제기라고 할까, 생각이라고 하는 것을 전할 수 있는 작품에 나온다는 것은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연기 이외에서 뭔가 큰 소리를 내어 주장하고 싶은 생각이 원래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인가에 대한 분노, 불만, 불신감 같은 것이 싹텄을 때, 작품을 통해서, 연기를 통해서, 저와는 다른 인간을 통해서 전하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 죄의 목소리와 같은 작품을 통해서라면, 예를 들면 요 몇개월 간의 여러 과도한 뉴스에 대한 본연의 자세, '그건 당신이 기사화할 일은 아니지 않아?' 라는 생각이 드는 프라이버시에 관한 걸 보는 일이 많이 있어서요... 이 작품에 나오는 건 과거 사건인데 매스컴의 자세와 사람의 마음에 다가간다는 건 도대체 어떤 것일까? 라는 걸 지금 다시 한번 묻는 거라고는 할 수 없지만 조금 생각해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에 출연할 수 있다는 건 긍지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이게 배우의 묘미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호시노 - 이 작품은 뉴스라는 것을 미디어로 많은 사람에게 알림으로써 생기는 '보이지 않음'이라고 할까요. 알려 버리는 것으로 오히려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생기거나, 확실히 보이지 않는 것이 있는데 보이는 듯하다는 착각을 하게 되거나 이러한 뒤편을 그리고 있습니다. 뉴스를 봤을 때, 더 뒤가 있겠지 하는 일상에 피드백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는 이들에게 좀 더 상상해보자는 생각을 심어주기 위해 저는 이 안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배우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품 속에 살면서 생각을 화면에 살짝 담음으로써 대변합니다. 당사자의 말, 사건 속의 사람 생각은 아무래도 느껴지지 않기도 하고 물어볼 수도 없는 거잖아요. 그것을 이야기로써 대사를 주어 표현할 수 있고, 마치 거기에 있던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는 건 배우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이기심을 없애고, 역할이 거기에 살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도록 연기를 해 나가는 것이 굳이 말한다면 긍지인 것 같습니다.」
「오구리 - (진지한 표정으로) 지금 한 코멘트, 제가 한 것으로 해도 될까요?」
「호시노 - 그런 타입의 주연이야? 사람의 코멘트를 빼앗아버리는 거야? (웃음)」
경쾌한 대화로 현장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행동은 매우 믿음직스럽고, 앞으로도 두 배우는 일본 영화계의 선두를 달리며 "지표" 역할을 해 줄 것 같다.
오구리 슌은 '신해석 삼국지'가 2020년 12월에 개봉되는 한편, 할리우드 데뷔작 '고질라 VS 킹콩'도 21년에 대기중. 2022년에는 미타니 코키가 연출하는 NHK 대하드라마 '가마쿠라도노의 13인' 주연도 결정되어 있다. 뮤지션, 배우, 문필가 등 다채로운 얼굴을 지닌 호시노 겐은 2021년 1월에 방송되는 TBS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힘내라 인류! 신춘 스페셜!!' 크랭크인이 막 시작되었다. 매우 바쁜 두 사람은 5년 후, 10년 후, 무엇을 바라보며 어디로 향하려 하고 있는 것일까.
「오구리- 5년 후에는 43세, 10년 후에는 48세가 되네요. 제 안의 막연한 목표이지만, 45세 정도까지 장소를 불문하고 다양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쟤 좀 재밌을 것 같으니까 써보자는 말을 해주는 제작자가 있다면 어디로든 날아갈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즐거운 미래가 될 것 같네요.」
「호시노 - 음악 세계에는 국가나 언어의 장벽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장벽을 제거한 상태에서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코로나로 매우 힘들지만, 작년 1년간 여러가지 노력을 해왔습니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요 몇년 동안은 계속 벽이 없는 상태로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벽을 부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확산 여파로 영화계도 전환기를 맞고 있다. 촬영장 본연의 자세, 영화관 본연의 자세, 영화제 본연의 자세 등도 그렇지만, 변함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둘도 없는 한때라는 것. 볼만한 사회파 작품으로 완성된 '죄의 목소리'도 영화관에서 봐야 할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구리 슌과 호시노 겐에게 지금 영화란 어떤 존재일까.
「호시노 - 좋은 말이 아니긴 하지만, 저는 현실 도피라고 생각해요. 어릴 적부터 영화, TV, 만화, 소설 등 창작물이라고 하는 사람의 표현을 봄으로써 시간 가는 줄 모르고, TV가 켜져 있으면 빠져버려요. 다른 일을 못해요. 움직이는 영상을 보면 의식이 자꾸 그쪽으로 가버리거든요. 영화관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고 할까요,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잖아요. 현실을 사는 건 정말 힘들잖아요. 저는 허구나 이야기를 보는 걸로 두근두근하거나 희망을 받으며 살아왔어요. 지금은 그것을 만들 수 있는 위치에 익숙해져 있어서 어릴 때부터 보아온 설레는 감각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고, 좋은 의미로 현실 도피가 가능한 장소를 열심히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
「오구리 -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얼마전 오랜만에 연극을 보러 갔는데 객석에 앉은 것만으로 감동해버렸어요. 굉장히 사치스러운 시간이었죠. 긴 연극이라 3시간 반 정도 있었는데 무척 행복했어요. 역시 다른 사람과 특별한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 같은 장소에 와서, 같은 것을 보고 돌아가는 것이 저는 좋아요. 영화관이라고 하면 좋아하는 여성과 영화를 보러 가고, 손을 잡고 싶다고 생각하는 시간과 영화를 보고 있는 시간 중 어느 쪽이 길었을까... 같은 걸 생각하면서 보내는 공간도 좋네요. 지금 영화라는 정의가 바뀌고 있잖아요. 하지만 저는 일부러 영화관에 가서, 각자의 삶이 그 순간에만 교차한다는 게 영화나 연극의 멋진 부분인 것 같습니다.」
※ 영화 해설
실제로 벌어졌던 쇼와 최대의 미해결 사건을 모티브로 과거의 사건에 농락당하는 두 남자의 모습을 묘사하며 제7회 야마다 후타로상을 수상하는 등 높은 평가를 받은 시오타 타케시의 미스터리 소설 '죄의 목소리'를 오구리 슌과 호시노 겐의 첫 공동 출연으로 영화화. 헤이세이가 끝나려는 때, 신문기자 아쿠츠 에이지는 쇼와 최대의 미해결 사건을 쫓는 특별 기획팀에 뽑히면서 30년도 더 된 사건의 진상을 쫓으며 남아있는 증거를 바탕으로 취재를 거듭한 나날을 보낸다. 그 사건은 범행 집단이 협박 테이프에 3명의 아이 목소리를 사용한 것이 아쿠츠는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 한편 교토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는 소네 토시야는 아버지의 유품 속에서 카세트 테이프를 찾아낸다. 꺼림칙한 테이프를 재생하자 어린 시절 자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는 30년도 더 된 과거에 복수의 기업을 협박하고 일본을 뒤흔든 쇼와 최대의 미해결 사건에서 괴한들이 사용한 협박 테이프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와 같았다. 신문 기자 아쿠츠를 오구리 슌이, 또 한명의 주인공인 소네 토시야를 호시노 겐이 연기했다. 감독은 기린의 날개, 극장판 신참자의 도이 노부히로, 각본은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언내추럴 등으로 잘 알려진 노기 아키코. '죄의 목소리'는 제 44회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했다. (2020년작, 142분, 배급사 토호)
※ 작품 개요
협박 테이프에 사용된 것은, 어릴 적 자신의 "목소리"였다.
오구리 슌 × 호시노 겐. 인기와 실력을 겸비한 일본의 엔터테인먼트계를 견인하는 두 사람이 영화 첫 공동출연한 가을 최대 주목작 '죄의 목소리'. 원작은 2016년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에서 제1위를 차지하는 등 높은 평가를 얻은 시오타 타케시의 베스트셀러 소설. 픽션이지만, 일본을 휩쓸고는 미해결인 채로 시효가 지난 대사건을 모티브로 면밀한 취재와 착상이 섞여 사건의 진상과 범인상에 다가가는 스토리가 '정말로 그러했던 건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하는 리얼리티가 넘쳐 큰 화제를 불렀다.
사건에 농락당하면서도 그 속에 잠든 진실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두 남자. 주인공 신문기자 아쿠츠 에이지를 연기하는 이는 오구리 슌. 지금까지도 수많은 화제작에 출연했으며, 근래에는 은혼 시리즈의 코미컬한 연기부터,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인간 실격에서의 섬세한 연기를 보이며 폭넓은 역할을 연기. 만반의 준비를 거쳐 고질라 VS KONG로 할리우드 영화에도 진출! 35년도 더 지난 공소시효가 지난 범죄사상 유례없는 극장형 범죄의 진상과 수수께끼의 범인 집단을 쫓는 신문기자를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연기했다.
또 다른 주인공 소네 토시야를 연기하는 이는 호시노 겐. 영화 첫주연이었던 묻지마 사랑, 지옥이 뭐가 나빠로 일본 아카데미상 신인배우상을 수상. 배우, 음악가, 문필가로서 폭넓게 활약하고 있는 호시노가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양복점을 운영하며 평범한 매일을 보내다가 우연히 어릴 적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일본을 뒤흔든 미해결 대사건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버리는 남자를 섬세하게 연기했다.
보는 이의 모든 마음을 꿰뚫는 감동 휴먼 미스터리 대작의 탄생.
감독은 지금 만나러 갑니다, 눈물이 주룩주룩, 기린의 날개 등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도이 노부히로. 각본은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중쇄를 찍자! 등으로 도이 감독과 팀을 이뤄 언내추럴, MIU505까지 담당한 노기 아키코가 담당했다. 게다가 주제가 담당은 드라마 테세우스의 배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독특한 노랫소리와 음악성으로 많은 팬들을 매료시켜온 Uru. 이 작품을 위해 써내려간 덧없이 힘찬 곡 '후리코'가 작품 세계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 스토리
35년전, 일본 전체를 휩쓸어버린 경악의 대사건. 식품회사를 표적으로 한 일련의 기업협박사건은 유괴와 몸값 요구, 그리고 독극물 첨가 등 갖가지 범죄를 반복하는 흉악함과 동시에 경차로가 언론까지 도발하며 세간의 관심을 끌고는 홀연히 사라진 의문의 범인들로 구성된 일본 범죄사상 유례없는 극장형 범죄였다.
다이니치 신문기자 아쿠츠 에이지(오구리 슌)은 이미 시효가 지난 이 미해결 사건을 쫓는 특별기획팀에 선택되어 취재를 거듭하는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한편, 교토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는 소네 토시야 (호시노 겐)은 가족 3명과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만 어느 날, 아버지의 유품 속에서 낡은 카세트 테이프를 발견한다.
※ 출연 배우 코멘트
아쿠츠 에이지 (오구리 슌)
다이니치신문 오사카 본사 문화부 기자. 원래는 사회부 기자로서 분투하였으나, 헤이세이가 끝나는 타이밍에 쇼와의 미해결 사건을 특집하는 특별기획팀에 뽑혀 '긴만 사건'을 담당하게 된다.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도 가는 실마리를 잡아 사건의 핵심에 다가간다.
오구리 슌 COMMENT
원작을 다 읽고 난 후에, 열면 안 된다는 문을 열어버린 것과 같은 흥분과 불안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작품을 영화화하는데 각오를 해야할 것 같았는데 제작진을 만나 확고한 각오를 듣고 그 각오의 일원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훌륭한 스탭, 출연진, 그리고 독특한 존재감을 가진 언행이 부드럽고 저조차도 때때로 단순한 팬의 시선으로 함께 촬영하고 있는 것을 기뻐해버리는 호시노 겐이라고 하는 훌륭한 아티스트와 함께 만들 수 있다는 것. 아쿠츠라고 하는 인간을 통해 수많은 소리와 마주하며 진실의 소리를 놓치지 않도록 진상에 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 지금, 그럼에도 잊어서는 안 될 작은 목소리가 있습니다. 기대해주세요.
소네 토시야 (호시노 겐)
교토에서 양복점을 운영. 2대째 점주. 어느 날, 아버지의 유품에서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를 발견. 자신의 어릴 적 목소리가 35년 전의 긴만사건에서 사용된 녹음 테이프의 아이 목소리와 완전히 같다는 것을 깨닫는다. 진상을 알게 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숙명과 사건의 수수께끼를 쫓는다.
호시노 겐 COMMENT
3년 전, 어느 작품의 촬영중에 프로듀서 나스다 씨와 잡담을 나누고 있었을 때였어요. 이 작품의 이야기를 듣고, 그 발상과 두려움에 격렬하게 소름이 돋았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역할을 겐짱으로 이미지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긴 세월을 거쳐 소네 토시야를 연기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감회가 새롭고, 기쁩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오구리군과 처음으로 차분히 일할 수 있다는 것, 진심으로 신뢰하고 존경하고 있는 도이 감독님, 노기 씨와 다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도 정말로 기쁘고 행복합니다. 비극적이면서도 인간이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메세지가 담겨진 이 작품속에서 소네 토시야의 슬픔과 함께 살며, 연기하고 싶습니다. 기대 많이 해주세요.
원작자 시오타 타케시
1979년 효고현 출생. 칸사이 학원대학을 졸업 후, 고베 신문사에 근무. 2010년 반상의 알파로 제5회 소설 현대 장편 신인상 수상. 이 책은 2019년 NHK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2012년 고베 신문사 퇴사. 2016년 죄의 목소리로 제7회 야마다 후타로상을 수상.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10 제1위, 제14회 서점 대상 제3위로도 선택. 2019년 뒤틀린 파문으로 제40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을 수상.
시오타 타케시 COMMENT
헤이세이가 막을 내리고 새 시대를 맞게 되면 역사에 새겨지는 쇼와의 주름이 또 하나 깊어진다. 죄의 목소리는 픽션이지만 모델로 한 경찰청 광역중요지정 114호는 쇼와 역사상 최대의 미해결 사건이다. 테러범들은 칸사이 사투리의 독특한 도전장을 언론에 보내고, 거리 곳곳에 지시서를 붙여 몸값을 받아내는 사상 초유의 극장형 범죄를 저질렀다.
21살 때, 나는 사건에 아이 목소리가 이용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납치범들은 몸값 전달 지시서 대신 아이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테이프를 내보낸 것이다. 일설에는 3명의 아이가 관련되어 있는 듯하지만, 나는 최연소의 미취학아와 동세대이며, 같은 칸사이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 어디선가 스쳐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전신에 소름이 끼쳤고 어떻게든 이 아이들의 이야기가 쓰고 싶어졌다. 그 이후 죄의 목소리를 완성하기까지 15년의 세월이 걸렸다.
영상화는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아쿠츠 에이지 역에 오구리 슌 씨, 소네 토시야 역에 호시노 겐 씨라고 들었을 대, 저의 이미지를 뛰어넘는 배역이라는 생각에 무릎을 쳤다. 이후 캐스팅과 스태프에 대해 듣고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프로들이 모인 것 같아 흥분됐다. 영화화 의뢰를 받은 후에 제작진의 진심을 느낄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 그 중 하나는 강경하고 유연하게 이야기를 엮어내는 노기 아키코 씨의 각본이다. 이 영화는 총력전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 후 최대의 미제 사건에 맞설 수 없다. 새 시대를 맞는 일본에서 영화가 지닌 큰 힘을 믿고 대작의 완성을 기다리고 싶다.
원작자 시오타 타케시
1979년 효고현 출생. 칸사이 학원대학을 졸업 후, 고베 신문사에 근무. 2010년 반상의 알파로 제5회 소설 현대 장편 신인상 수상. 이 책은 2019년 NHK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2012년 고베 신문사 퇴사. 2016년 죄의 목소리로 제7회 야마다 후타로상을 수상.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10 제1위, 제14회 서점 대상 제3위로도 선택. 2019년 뒤틀린 파문으로 제40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을 수상.
시오타 타케시 COMMENT
헤이세이가 막을 내리고 새 시대를 맞게 되면 역사에 새겨지는 쇼와의 주름이 또 하나 깊어진다. 죄의 목소리는 픽션이지만 모델로 한 경찰청 광역중요지정 114호는 쇼와 역사상 최대의 미해결 사건이다. 테러범들은 칸사이 사투리의 독특한 도전장을 언론에 보내고, 거리 곳곳에 지시서를 붙여 몸값을 받아내는 사상 초유의 극장형 범죄를 저질렀다.
21살 때, 나는 사건에 아이 목소리가 이용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납치범들은 몸값 전달 지시서 대신 아이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테이프를 내보낸 것이다. 일설에는 3명의 아이가 관련되어 있는 듯하지만, 나는 최연소의 미취학아와 동세대이며, 같은 칸사이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 어디선가 스쳐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전신에 소름이 끼쳤고 어떻게든 이 아이들의 이야기가 쓰고 싶어졌다. 그 이후 죄의 목소리를 완성하기까지 15년의 세월이 걸렸다.
영상화는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아쿠츠 에이지 역에 오구리 슌 씨, 소네 토시야 역에 호시노 겐 씨라고 들었을 대, 저의 이미지를 뛰어넘는 배역이라는 생각에 무릎을 쳤다. 이후 캐스팅과 스태프에 대해 듣고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프로들이 모인 것 같아 흥분됐다. 영화화 의뢰를 받은 후에 제작진의 진심을 느낄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 그 중 하나는 강경하고 유연하게 이야기를 엮어내는 노기 아키코 씨의 각본이다. 이 영화는 총력전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 후 최대의 미제 사건에 맞설 수 없다. 새 시대를 맞는 일본에서 영화가 지닌 큰 힘을 믿고 대작의 완성을 기다리고 싶다.
✔︎ 각본 작업
이윽고 본격화된 각본 작업. 정보량이 방대한 원작을 2시간짜리 영화로 만들기 위한 각본 작업은 극도로 힘들었다. 원작을 어떻게 담아낼까, 가장 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들을 쫓는 과정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깎아낸 에피소드도 있는가 하면, 영화로서 필요하다고 판단해 추가한 장면도 있다. 10시간 이상 걸리는 회의를 몇 번이나 반복했고, 마침내 원작자도 극찬하는 멋진 각본이 완성되었다.
노기 각본가 - 원작자의 각본을 다룰 때는 사람의 아이를 맡는 기분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원점에 있는 원작자의 의도를 헤아려 영상작품으로 독립시키고,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도 전달될 수 있는 각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번엔 젊은 사람이나 외국인, 이 사건을 모르는 분들에게도 사건을 알게 한 다음, 주인공 두 사람은 물론 토시야의 가족, 희생이 된 아이들의 이야기 등도 집어 넣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요소가 워낙 많다보니 한정된 분량 안에서 어떻게 그릴지 고민도 빠듯했습니다. 정보를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이야기에 파고들 수 없고, 지금까지의 작품에는 없던 고생이 있었습니다.
원작의 스토리를 짧게 커트할 때는 원작을 따르는 가운데 다른 발상을 이끌어 오면서 원작의 색깔로 만드는 것에 유의한다고 한다. 그것이야말로 도이 감독이 꼽는 노기 각본의 매력 중 하나이다.
도이 감독 - 노기 씨는 원작의 스피릿을 잡아 영상작품이라는 맥락에서 재구축하는데 능숙합니다. 새로운 에피소드를 추가해도 심지는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표현으로 빠져들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등장인물에 대한 애정이 깊습니다. 그래서 벅찬 원작으로 고생도 많았지만 노기 씨가 함께 싸워 준 것이 저희에겐 굉장히 큰 힘이 되었습니다.
✔︎ 캐스팅 ~ 크랭크인
미해결 사건의 진상을 쫓는 신문기자로 숨겨진 뜨거움이 있는 아쿠츠 에이지 역에 오구리 슌. 어릴 적 자신의 목소리가 협박 테이프에 사용된 양복점 운영의 소네 토시야 역에 호시노 겐. 동세대의 톱러너인 두 사람의 공동 출연은 나스다 프로듀서가 원작을 읽으면서 즉석에서 이미지하고, 열망한 캐스팅이다.
나스다 프로듀서 - 두 사람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고, 어느 한쪽이 부족했다면 제 손으로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도이 감독님도 이들의 캐스팅에 대해 아쿠츠와 소네 역을 포함하여 매우 재밌을 것 같고 조합이 잘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촬영은 마침 시대가 헤이세이에서 레이와로 바뀌어 2019년 3월부터 5월에 걸쳐 행해졌다. 크랭크인은 3월 25일, 치바현 내의 중학교. 호시노가 연기하는 토시야가 노조미의 예전 담임에게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자신의 목소리가 범죄에 사용되었던 것을 밝히는 장면. 첫날부터 중요한 장면의 촬영이 되었다.
도이 감독 - 첫날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동요를 안고 토시야가 지금 여기에 있는지에 대해서 호시노군과 의논했습니다. 아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숨기는 강인함, 뻔뻔스러움은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하면서 사투리도 포함하여 세세한 부분까지 확인했습니다.
첫 촬영 후, 오랜만에 도이 감독 팀으로 일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한 호시노 겐. 호시노 겐은 자신의 목소리가 그 사건에 왜 사용되었는가를 찾는 매우 매력적인 역할이라 무서워하면서, 즐기면서 역할을 만들어 가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그런 만큼 크랭크인전에 다림질, 옷감의 취급 등등 테일러의 작업을 대충 배워 촬영에 임했다. 토시야가 말하는 교토 사투리의 악센트는 교토 사투리라고 해도 지역에 따라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에 섬세한 뉘앙스가 요구되었는데 역시 뮤지션답게 훌륭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아쿠츠를 연기한 오구리 슌의 크랭크인은 4월 6일. 호텔 라운지에서 전직 증권맨을 취재하는 장면이었다.
도이 감독 - 아쿠츠는 사회부 기자 출신이지만, 스스로 원해 문화부 기자가 됐습니다. 본의가 아닌 형태로 이 미해결 사건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어느새 깊게 빠져들어서 관객은 아쿠츠의 시선으로 이 사건을 쫓아가게 됩니다. 각 취재처에 대해 어느 정도의 열의나 흥미를 가지는 방법으로 대할 것인가. 작은 시선이나 대사의 톤으로 표현하기 위해 장면마다 확인하면서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첫 촬영을 마친 오구리 슌은 '아쿠츠의 성장을 최선을 다해 연기해 나가고 싶다'는 자세를 보였다.
오구리 슌과 호시노 겐이 함께 출연하는 장면을 처음으로 찍은 건 4월 8일. 영화 중반부의 고비라고 할 수 있는 아쿠츠와 소네의 첫대면 장면이었다.
테일러 소네를 방문한 아쿠츠가 토시야에게 테이프를 들려주었으면 한다, 진실을 분명히 하고 싶다고 호소하지만 토시야는 아쿠츠를 되돌려 보낸다. 리허설부터 현장은 고양감으로 넘쳤다. 중요한 장면인만큼 촬영은 장시간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으나 두 사람의 호연으로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도이 감독 - 연출을 굳히기 전에 먼저 두 사람이 연기해보았는데, 처음부터 좋은 긴장감과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것이 곧바로 확인되어 저는 세밀한 튜닝을 해나갈뿐이었습니다.
오구리와 호시노는 코우노도리에서 함께 했던 적이 있지만 본격적인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평상시부터 친분이 있어 촬영 사이사이에는 부드럽게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소네의 양복점은 토호 스튜디오 안에 세트로 제작되었다. 교토에서 4대째 이어지고 있는 노포 양복점을 취재하여 참고로 하면서 2018년 12월 영국 로케로 방문한 새빌로우(런던 중심부에 있는 영국 신사복의 성지)의 영국풍도 도입해 융합시켰다. 세트 내부는 노포로부터 빌린 혀지, 도구 등도 늘어놓아 실제로 영업이 가능할 것 같을 정도의 리얼리티를 자아냈다. 세트의 외관은 나중에 교토로 옮겨져 히가시야마의 사라카와변에 세워져 촬영에 사용되었다.
4월 11일~20일까지는 칸사이 로케. 아쿠츠와 토시야가 황혼의 세토대교를 배경으로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장면은 영화 오리지널.
도이 감독 - 쫓고 쫓기는 입장이었던 두 사람이 함께 사건의 진상을 향해 감녀서 어느샌가 기묘한 우정이 태어나는 과정을 그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계속 있어서 대본 마지막 단계에서 살을 붙인 장면입니다. 서로의 속마음을 느끼는 장면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11일에 오카야마현 쿠라시키에서 촬영했지만 꽤 날씨가 나빴다. 감독의 희망으로 다음날 스케줄을 어떻게든 조정하여 같은 장소에서 재도전. 전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한 노을을 배경으로 최고의 장면이 찍혔다.
도이 감독 - 세팅을 포함해 힘든 장면이었지만, 스태프도 출연자도 누구 하나 불평없이 시도해 주어서 좋은 팀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습니다. 아쿠츠와 토시야의 거리감이 부쩍 가까워져 가는 설득력이 있는 장면이 되었고, 무엇보다 두 사람 모두 연기하는 것을 몹시 즐기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알았습니다.
증언자들, 가족, 동료 등 등장인물이 많은 죄의 목소리. 짧은 출연 장면일지라도 역할이 중요하여 실력파 배우가 다스 캐스팅되었다. 작품을 지탱하는 출연자, 로케. 개성 풍부한 배우진이 날마다 번갈아 오는 현장.
도이 감독 - 긴장감이 끊이지 않는 나날이었습니다. 사전에 어느 정도 예상을 하거나 상상하며 현장에 가지만, 막상 그 사람을 만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생각되로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더 재미있어요. 날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작품에도 반영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촬영했습니다.
등장인물의 수 뿐만 아니라, 장면의 수도 로케 장소의 수도 많지만 촬영을 진행시키는 가운데 감독은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도이 감독 - 다리 위의 장면이 많았습니다. 우연이지만 그려진 도시에 강이 있고 인상적인 다리가 있어요. 그곳을 아쿠츠가 건너가는 것은 장소나 시대를 월경하면서 진실에 가까워져 가는 이미지와 겹쳐져 이 작품에 통저하는 하나의 테마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쇼와 시대 표현에 대해서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누구나 모르는 시대라면 판타지로 다룰 수 있지만 쇼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기에 그 기억 속의 쇼와를 그려야만 한다. 당시를 모르는 인력도 많은 가운데, 되도록이면 CG를 사용하지 않는 표현을 지향했다. 쇼와 냄새가 나는 촬영지를 찾아내고, 미술, 의상, 분장, 소품 등이 힘을 결집하여 당시의 느낌을 재현하고 있다.
크랭크업 ~ 영국에서의 촬영
호시노 겐이 크랭크업을 맞이한 날은 5월 7일. 아쿠츠와 토시야가 소이치로의 행방을 쫓아 중화요리점을 방문하는 장면이었다. 호시노는 이 팀을 떠나는 것이 쓸쓸할 만큼, 정말로 즐거운 현장이었다며 충실한 표정을 보였다.
한편 오구리 슌에게는 영국에서의 촬영이 남아있었다. 아쿠츠의 말을 빌린다면, 진짜 죄인을 끌어내는 여행이었다. 5월 하순부터 일본인 스태프가 영국에 도착하여 현지 스태프와 함께 원작에서도 그려진 영국 북부의 지방도시 요크에서 촬영을 감행했다. 참고로 오구리 슌의 영어가 너무 유창해서 조금 서툴게 말하기로 했다.
도이 감독 - 영국에 오기 전까지의 아쿠츠는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기자로서의 위치를 지켜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국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감증으로 상대를 대합니다. 중요한 장면이라 상당한 긴장감을 갖고 촬영에 임했는데, 오구리 씨의 연기가 훌륭했습니다. 아쿠츠의 종착점을 제대로 표현받을 수 있었습니다.
노기 각본가 - 집필하고 있을 때는 울 수 있는 장면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영상을 보고는 울었습니다. 아쿠츠는 감정을 억제하고 있지만 넘쳐나는 것이 있었어요. 역시 오구리 씨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곳을 찍어도 그림이 되는 거리에서 훌륭한 장면을 많이 담으면서 작품은 무사히 크랭크업. 오구리 슌 역시 아름다운 거리에서 촬영할 수 있어 좋았다며 웃음을 보였다.
도이 감독 - 오구리군과는 한번 연속 드라마의 게스트로 나와 잠깐 함께 했던 적이 있었던 것이 다입니다. 여러 작품에서 보고 있습니다만 주역으로서의 존재감이 대단합니다. 하지만 아쿠츠는 자신에게 큰 스토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보고 있는 이의 시선이 되어 사건의 핵심에 가까워져 가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장면이 많아 어려운 입장이었을 텐데, 최종적으로 완성된 작품을 보면 제대로 영화의 중심에 서 있어서 대단하다고 생각됐습니다. 토시야 역할은 처음 배역을 들었을 때부터 장인적인 모습이 호시노군에게 딱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미스터리 속에 존재하는 역할은 지금까지 별로 경험이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호시노군은 표현자로서, 생활자로서의 감각이나 시선을 항상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처자식이 있는 한 생활자로서 토시야의 망설임이나 공포, 용기와 같은 복잡한 감정을 아주 자연스러운 설득력으로 표현해 준 것 같습니다.
※ 소설 원작자 인터뷰
데뷔 6년차 작가 시오타 타케시 씨가 만반의 준비를 거쳐 발표한 소설 '죄의 목소리'는 1984~1985년에 일어난 쇼와 최대 미해결 사건의 하나인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완성될 때까지의 생애의 고통을 담당 편집자 도이 타케시와 이야기하다.
시오타타케시 (1979년 효고현 출생)
착상을 얻은 것은 16년 전, 대학생 때.
도이 - 시오타 씨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대학생 시절이라고 들었습니다.
시오타 - 칸사이에서 태어나서인지, 고교시절엔 만담을 하고 싶어서 자주 대본을 썼습니다. 그래도 계속 떨어졌죠. (웃음) 대학에서는 만담 이외의 엔터테인먼트를 목표로 하려고 극단 워크샵에 참가하면서 각본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후지와라 이오리 씨의 소설 테러리스트의 파라솔이 너무 재밌어서 단숨에 다 읽었습니다. 그날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도이 - 죄의 목소리의 착상을 얻은 것도 대학시절이었나요?
시오타 -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이 일어난 것은 제가 아이였을 때지만, 경찰이 공개한 여우눈 사나이의 몽타주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사건 당시, 어머니께 '함부로 과자를 먹으면 안 돼'라는 말을 들었던 것도 기억납니다. 하지만 사건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어요. 대학교 식당에서 우연히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 관련의 책을 읽고 처음으로 범행에 '아이의 목소리'가 사용된 것을 알게 됐습니다.
도이 - 이 작품의 새로운 점은 그 아이에게 초점이 맞춰진 부분이네요.
시오타 - 굉장히 큰 소재니까 대학생인 저에겐 쓸 수 없을 거란 걸 알았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 신문기자가 되었지만, 작가가 되기 위해 사회 공부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도 있어요. 소설 프롤로그를 생각했던 건 신문기자가 되어서 경찰서를 돌아다녔던 때였습니다. 평범한 생활을 보내던 주인공이 어느 날 집에서 녹음 테이프를 발견하고 들어보니, 어린 시절 자신의 목소리가 들어 있었는데 그것도 과거 흉악사건에서 사용된 목소리라는 걸을 깨닫습니다.
도이 - 그런데도 글을 시작하진 못하셨네요.
시오타 - 누군가가 이 기사가 생각나서 먼저 쓰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계속 있었습니다. 쓰고 싶으면서도 도무지 쓸 수가 없었어요. 다른 걸 계속 쓰다가 2010년, 제가 31살 때 소설 현대장편신인상을 받고 데뷔에 이르렀네요.
도이 - 정확히 그 해, 저는 소설 현대 편집부로 이동했습니다. 제 선배인 시오미가 시오타 씨의 담당이 되었습니다만, 시오미에 이끌려서 저도 자주 시오타 씨와 만났었네요.
시오타 - 데뷔 때부터 알고 지내왔네요. 도이 씨와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도이 - 항상 말하고 싶은 걸 심하게 말해버려서 죄송합니다. (웃음)
시오타 - 실은 신인상을 받았을 때, 드디어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에 대해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시오미 씨에게 아이디어를 이야기했어요. 그랬더니 '지금의 시오타 씨 필력으로는 쓸 수 없어요'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곳에서는 쓰지 마세요, 우리 소재라고 했었죠.
도이 - 사건 당사자의 대부분이 살아 있는 가운데 쓰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고, 준비와 각오가 필요하다고 저도 생각했습니다.
시오타 - 써야 할 때가 드디어 왔다고 도이 씨에게 들었던 건 작년 초네요. 저의 8번째 소설을 쓰고 난 뒤였습니다. '지금까지의 8작품으로 개인의 인생을 쓸 수 있는 작가인 것은 알았습니다'라고요.
도이 - 다음은 사회를 쓰는 단계가 아닐까 하고 전했었죠.
시오타 - 하지만 제가 거절해버렸어요. 그렇게나 쓰고 싶어했는데, 좀 더 준비가 필요한 건 아닐까 하고 두려워졌거든요.
도이 - 그래서 다시 한번 부탁드리려 갔었네요.
시오타 - 그때 저도 쓰겠다고 답했었죠. 잘 생각해보니, 저의 베스트 타이밍에 일을 받는다는 건 별로 없으니까요. 발돋움 상태에서 무언가를 움켜쥐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도이 - 신인상을 받았을 때, 시오타 씨는 독신이었지만, 그 이후에 결혼하시고, 따님이 태어난 것도 컸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소설은 절대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 같았어요.
시오타 - 그렇네요. 주인공은 어린 시절 자신의 목소리가 흉악사건에 이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미해결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지만, 아이라는 보물을 부모가 범죄에 사용한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어요. 분노마저 들었습니다. 그런 마음이 생긴 것도 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도이 -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의 범인은 유머 넘치는 도전장을 경찰과 매스컴에 보내고, 사회를 우롱하고 깨끗하게 사라졌기 때문에 의적이라는 인상이 있네요.
시오타 - 그렇지만 기업에 보낸 협박장은 세간에 공개되지 않아서인지 막말들이 즐비합니다. 그들은 의적도 아무것도 아니고 목적은 단순한 돈이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도이 - 시오타 씨에겐 지금까지 신문기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면밀한 취재를 기본으로 소설을 써왔는데,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네요.
시오타 - 죄의 목소리는 발생일시나 장소, 도전장, 협박장의 문구, 보도내용에 대해서는 충실하게 썼습니다. 사건 현장을 몇번이나 취재해서 범인의 숨결을 느끼며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일부러 애매하게 적어갔습니다. 이 작품을 읽은 저널리스트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첫마디가 '이거 어디까지 진짜야?' 였어요. 저는 취재 과정에서 작품에 그린 추리가 성립된 것을 설명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범죄의 뒤에는 몇 개의 슬픈 인생이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특히 사건에 이용된 아이는 어떠한 인생을 보냈는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에 지금 그 사건을 다루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도이 - 이번 작품은 무대를 런던까지 확대한 것으로 이야기에 폭이 생겼습니다.
시오타 - 실제로 범인은 도전장에 '유럽에 간다'고 몇 번인가 썼으니까요.
도이 - 시오타 씨는 런던 취재에 혼자 갔었고, 그 전에 영어 검정 자격도 땄네요. 저 몰래. (웃음)
시오타 - 이 소설 주인공이 신문기자로 영어 준1급을 가지고 있어서 그가 취재로 런던을 방문한다고 설정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준1급을 따고 런던에 갔어요. 그랬더니 의외로 말을 할 수 없었죠. (웃음) 소설 속에서는 취재로 들을 것을 영어로 미리 준비해 런던을 방문한 것으로 했습니다.
도이 - 원고 발표는 소설 현대의 전자판으로 연재가 되었습니다. 작년 가을부터 4개월간 연재해 주셨는데, 집필 중에도 취재가 계속되었네요.
시오타 - 연재가 끝날 때까지 작년에는 다른 일을 일절 하지 않고 이 작품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렇게 연재 원고를 다 썼는데 그 다음 단행본까지가 또 힘들었어요.
도이 - 원래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이 발생한 3월에 이 책을 출판하는 것을 목표로 작년 연말 연재를 마쳤는데, 그 직후에 이대로는 단행본이 될 수 없다고 말하게 됐네요.
시오타 - 그 때 도이 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어요. 저는 해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시 한번 쓰라는 거니까요. 한동안은 구내염이 3개 이상 있어서 좀처럼 낫지 않았습니다. (웃음)
도이 - 올해 1월 하순에 시오미와 저, 그리고 시오타 씨를 담당하고 있던 호리 아야코 셋이서 각각 원고에 의문점과 주문을 써서 건네 주었습니다. 3명이란 것은 이례적인 일이긴 했네요.
시오타 - 그래도 저는 패배를 시인해야 했어요. 이건 이제 고쳐야만 한다고 자각한 거죠. 한편으로는 제대로 썼다면 무척 좋은 작품이 될 거라는 감각이 무척 있었습니다.
도이 - 3명이 의견을 주면 시오타 씨가 혼란스러워할 것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모두 시오타 씨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오타 - 모두에게 지적받은 건 테이프의 아이에 대해 더욱 생각을 깊게 하라는 것이었죠. 결국 저는 주인공 중 한명인 그의 모든 파트를 장면에서 얻는 정보, 심리묘사, 배경설명 등 최소 단위로까지 분해하고 그 표를 바닥에 늘어놓으며 어디에 쓸모 있고, 무엇이 부족한가를 매일 고민하며 드디어 답을 찾았습니다. 연재 때는 쇼와 대사건의 범인을 쫓는 것에 사로잡혀 헤이세이의 소설가가 써야할 것은 그 부분이 아니라 사건의 새로운 시점인 아이의 인생이라는 기본으로부터 멀어져 버리고 있었습니다. 그 줄거리가 보이고 나서는 단숨에 진행되었습니다. 사건을 쫓는 신문 기자와 과거에 쫓기는 테이프의 아이라는 콘트라스트가 두드러져 후반 전개가 한층 더 가속하면서 이야기가 깊어졌습니다. 제목도 '땅 끝 비석'에서 '죄의 목소리'로 바꿔 어느 세대가 읽어도 즐길 수 있는 사회파 엔터테인먼트 소설이 된 것 같습니다.
도이 - 읽어주신 모든 분들이 재밌다고 해주십니다. 날짜, 장소, 컨디션에 관계없이 언제 읽어도 재밌기 때문에 꼭 읽어달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소설입니다.
시오타 - 어려운 도전이었지만 이미지를 훨씬 뛰어넘는 소설로 완성되었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명함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지금부터가 큰일이네요...
[인터뷰 끝]
※ 설마 아버지가!?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 매우 리얼한 전율작
이 소설은 제5회 소설 현대 신인상을 수상한 시오타 타케시 작품. 주인공은 두 남자. 작품에서 다루어지는 건 긴만사건이라고 불리는 범죄. 제과메이커 사장 납치로부터 시작되는 일련의 집요한 기업 공갈이며, 실제로 쇼와 시대에 일어난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을 거대한 무대장치로 만든 이야기이다.
쇼와 최대라고 부르기에 어울리는 미해결 사건은 지금까지도 다양한 형태로 다루어져 소설, 논픽션, TV 프로그램 등으로 세상에 전해졌다. 여러 뒷소문도 흘러나와 범인 집단의 관계자를 자칭하는 인물이 익명 게시판에 진상을 올리거나 CIA가 관련되는 장대한 음모론도 전개되기도 했다. 긴만사건으로 이름은 바뀌지만 소설 죄의 목소리에서는 발생부터 종언까지의 경과, 시대 배경, 실제 수사, 그리고 여우눈 사나이라는 범인상에서부터 사건 이후의 소문과 전설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현실에 준거하여 압도적인 리얼리티로 이야기된다.
이 작품에는 이 작품만의 시점이 있다. 그건 범인들이 아이를 끌어들인 것에 대한 분노. 실제 사건에서도 기업 공갈에 아이의 목소리가 사용되었다. 그동안 이 목소리는 어디까지나 '증거물'으로서의 시점이 우선되어 왔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되는 건 목소리가 존재하는 이상, 목소리의 주인공인 아이도 실재하는 것. 아마도 범죄에 가담된 것조차 모른 채 이용당한 아이가 실제로 있었을 것이다.
사건 당시, 매스컴 각사에 의한 보도 협정이 깔리고 범인 집단에 의한 협박 전모가 밝혀진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진실은 아직도 명확하지 않지만)
현재는 협박 목소리도 인터넷에 올라와 누구나 들을 수 있게 되었다. 80년대 중반에 시작된 사건으로부터 30년이 넘었지만, 당시의 아이들은 이미 어른. 만약 그가 지금 당시의 협박 목소리, '죄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자신도 모르게 범죄의 도구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누가? 왜? 그 순간부터 가족들조차 의심하게 되는 험난한 여행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
소설은 교토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며 극히 평범한 생활을 보내고 있던 소네 토시야가 부친의 유품에서 낡은 녹음기와 노트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테이프에 있는 목소리는 사건에서 사용되었던 목소리로 소네의 어릴 적 자기 목소리였다. 아버지가 범죄에 관여된 걸까? 그러나 과묵했던 아버지가 그 사건에 관련됐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한편, 다이니치 신문사에서는 연말 특집으로 미해결로 끝난 '긴만사건'을 다루는 심연의 주인이 기획되고 있었다. 문화 기자 아쿠츠 에이지는 응원기자로 뽑혀 유럽으로 날아가게 된다.
두 남자는 각자의 입장에서 진실을 좇는다. 한 남자는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다른 한 남자는 끝까지 진실을 밝히는 데 집념을 불태운다.
진실에 대한 두려움. 진실에 대한 갈망. 아마도 어느 쪽이나 인간의 본능일 것이다. 그렇게 마침내 두 사람은 만나게 되고 마침내 목적을 함께 하게 된다.
거대한 사건의 가장 잔혹한 진실은 무엇인가? 작자는 유쾌범으로 얼굴을 드러낸 범인들이 실제로는 냉혹하고 난폭한 면을 가지고 있었음을 지적한다. 언론을 이용해 경찰을 비웃고, 청산가리가 들어간 과자를 살포하며 기업을 협박한 대사건. 가장 잔인한 진실은 무엇인가.
※영화 죄의 목소리 (罪の声) 상세 스토리
교토에서 신사 양복점을 운영하는 소네 토시야(36세)는 2015년 여름의 어느 날, 아버지의 유품에서 카세트 테이프와 검은 가죽 노트를 발견한다. 노트에는 대량의 영문과 '긴가' '만당'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테이프를 재생하자 뭔가를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는 31년 전, 대형 제과업체인 긴가와 만당을 비롯한 몇몇 식품회사가 협박공갈을 당해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긴만사건'의 협박범의 목소리와 같았다. 이것이 어릴 적 자신의 목소리라 확신한 토시야는 오래 알고 지내온 호리타 신지(61세)에게 사정을 털어놓는다. 호리타는 노트를 보관했다가 며칠 후, 토시야를 불러네 30년에 걸쳐 실종된 토시야의 백부를 안다는 사람과 만나게 하고, 백부의 내력과 소식 등에 대해 듣게 된다. 그 인물은 긴만사건과 백부의 관계를 입에 담았다.
한편, 같은 무렵 다이니치 신문 오사카 본사에서 문화부 기자로 있던 아쿠츠 에이지(36세)는 연말 게재 예정의 긴만사건의 기획 기사에 응원요원으로 동원되었다. 영국 출장 명령을 받고 1983년 하이네켄 사장 납치 사건에 대해 전직 납치 협상인을 취재하거나 당시 영국에서 하이네켓 사건을 조사했다는 중국인을 찾았지만 헛걸음이었다. 귀국한 아쿠츠는 사건 전에 김가의 주가를 다룬 증권잡지 기사를 보고 관계자로부터 이야기도 듣지만 사건과 직접 연결되는 이야기는 듣지 못한다.
호리타와 토시야는 얻은 정보를 기초로 법인 집단이 회합을 열었다는 요릿집에 이야기를 들으러 간다. 백부가 있었다는 증언은 얻지 못했지만, 요리사는 호리타가 특징을 얘기한 다른 남자는 있었다고 대답한다. 호리타는 그 후에 이쿠시마라는 그 남자가 예전 시가현 경찰의 인물이고, 백부와도 친분이 있었다고 토시야에게 밝힌다.
성과를 얻지 못한 아쿠츠는 구마라켄구라고 자칭한 괴한들의 무선 교신을 녹취한 인물이 아이치현에 있었다는 사건 당시 취재기록에서 다시 그 정보를 캐기 시작했고, 허탕일 것 같았던 취재는 뜻밖의 성과를 가져온다. 거기서 떠오른 인물이 단골이었다고 하는 요릿집에 아쿠츠가 취재하려 들어가려던 무렵, 호리타와 토시야는 이쿠시마의 가족 소식을 아는 인물을 쫓고 있었다. 이윽고 토시야와 아쿠츠는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다.
※ 죄의 목소리 수상 내역
제44회 일본아카데미상
우수각본상 노기 아키코
우수작품상
우수주연남우상 오구리 슌
우수조연남우상 우노 쇼헤이, 호시노 겐
우수감독상 도이 노부히로
우수촬영상 야마모토 히데오
우수조명상 오노 아키라
우수음악상 사토 나오키
우수미술상 이소미 토시히로, 츠유키 에미코
우수녹음상 가토 야마토
우수편집상 호가키 준노스케
화제상 배우부문 오구리 슌
제45회 호치영화상 (2020년도)
작품상 수상
주연남우상 오구리 슌
조연남우상 호시노 겐
제42회 요코하마영화제 (2020년도)
조연남우상 우노 쇼헤이
2020년도 일본영화 베스트텐 제7위
제33회 닛칸스포츠영화대상
작품상 수상
주연남우상 오구리 슌
제75회 마이니치영화콩쿠르
남우조연상 우노 쇼헤이
※ 실화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 ※
글리고 모리나가 사건이란 1984년 (쇼와 59년)과 1985년(쇼와 60년)에 일본 오사카와 고베(오사카 효고현)를 무대로 식품 회사를 표적으로 한 일련의 기업협박 사건.
경시청 광역중요지정 114호 시건. 범인이 '괴인 21면상'이라고 자칭하여, 괴인 21면상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2000년 2월 13일에 아이치 청산가리를 넣은 과자 살포 사건의 살인 미수죄가 시효를 맞이하여 모든 사건의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 이 사건은 완전범죄가 되어 경시청 광역 중요 지정 사건으로는 첫 미해결 사건이 되었다.
→ 사건 개요
1984년 3월, 에자키 글리코 사장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한 사건을 시작으로 에자키 글리코에 대해 협박과 방화를 저지른다. 그 후, 마루다이식품, 모리나가 제과, 하우스 식품, 후지야, 스루가야 등 식품 기업을 차례차례로 협박. 현금의 인도에 대해서는 차례차례로 지정 장소를 바꾸었지만, 범인은 한번도 현금의 인도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범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여러 차례 목격되었지만 도망쳐 결국 정체는 알 수 없었다.
그 외에도 1984년 5월과 9월, 1985년 2월에 소매점에 청산가리 과자를 놓아 일본 전국을 불안에 떨게 했다. 1984년 4월 12일 경시청 광역 중요 지정 사건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헤이세이 12년) 2월 13일에 도쿄 아이치 청산가리 과자 사건의 살인 미수죄가 시효를 맞이하여 모든 사건의 공소 시효가 성립. 경시청 광역 중요 지정 사건으로서는 처음으로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미제 사건이다. 2005년 (헤이세이 17년) 3월에 제척기간 (민법 제724조)이 경과하여 민법상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했다.
기업에 보낸 협박장과는 별도로 보도 기관과 주간지 등에 도전장을 보내 독이 든 과자를 살포하여 사회 일반을 소란에 끌어들인 것으로, 평론가 아카츠카 유키오로부터 극장형 범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같은 시기에 이 사건과 병행해 화제가 되고 있던 미우라 카즈요시의 로스의혹과 함께 당시의 세태로서 되돌아보는 일도 많다.
→ 일련의 사건
에자키 글리코 사장 납치 사건
1984년 3월 18일 21시경, 당시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에 거주하던 에자키 글리코 사장 에자키 카츠히사의 친모 집에 권총과 공기총을 겨눈 2명의 남자가 부엌문을 부수고 침입 (집밖에는 운전석에 남자가 있어 범행은 3인조 남자가 실행), 사장집의 여벌 열쇠를 빼앗았다. 이들은 그대로 옆집 사장집의 부엌문으로 침입, 사장 부인과 장녀를 덮쳐 2명을 결박하고 옆의 화장실에 가두었다. 그 후, 2명의 남자는 욕실로 침입. 장남, 둘째 딸과 목욕 중이던 사장을 총으로 위협해 전라로 납치했다. 부인은 스스로 테이프를 풀어 110번으로 신고.
다음날 3월 19일 1시경, 오사카부 타카츠키시의 에자키 글리코 이사 집에 범인으로부터 지정된 장소로 오라는 전화가 왔다. 이사가 지정된 장소로 향하자 사장 몸값으로 현금 10억엔과 금괴 100kg을 요구하는 협박편지가 있었다.
이 때부터 효고현・오사카부에 걸친 중대 사안으로서 효고현 경찰 본부, 오사카부 경창 본부에 의한 합동 수사 체재가 시작된다. 이어 괴한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다른 지정 장소로 몸값을 가져오라고 요구했으나 결국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범인들이 요구한 현금 10억엔은 높이 9.5미터, 무게 130kg, 여기에 금괴 100kg은 운반이 어려웠고, 합동수사본부에서는 어디까지 범인들이 진심 어린 요구를 했는지 의아해하는 반응이 있었지만, 요구에 따라 글리코는 그것들을 준비했다. 사장의 어머니와 사장 부인이 범인데 대해서 '돈이라면 내겠다'고 말했는데도 '돈은 필요없어'라고 범인이 대답한 것, 몸값 납치가 목적이라면 저항당할 가능성이 적은 7세였던 사장의 장녀를 유괴하는 편이 리스크가 적은데 일부러 성인 남성인 에자키를 납치하고 있는 것들이 몸값 목적의 납치로서는 불가해한 점이며, 돈 목적이 아닌 원한에 의한 범행이라는 설의 근거가 되었다.
이후 납치 사건은 급물살을 탄다. 사건으로부터 3일 후인 3월 21일 14시 30분쯤, 국유 철도 직원으로부터 신고를 받아 오사카부 이바라키 경찰서에서 에자키가 보호되었다. 에자키의 증언에 의하면, 오사카부 셋쓰시의 도카이도 신칸센 차량 기지 근처를 흐르는 아이강변에 있는 치수 조합 수방 창고에서 자력으로 벗어나 건너편 강가에서 보였던 오사카 화물 터미널 역 구내로 진입,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인부들에 의해 무사히 보호되었다.
에자키 글리코 협박 사건
1984년 4월 2일, 에자키의 집에 발신인 불명의 협박장이 도착한다. 내용은 4월 8일에 지정 장소에 현금 6000만엔을 가지고 오도록 요구. 협박편지에는 염산이 든 안약통이 동봉되어 있었다. 4월 8일 현금 수령 지정 장소에 경찰이 잠복하였으나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4월 8일에는 범인 집단으로부터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과 산케이 신문에 편지가 도착한다. 언론에게 세상 일반에 공개를 전제로 한 첫 도전장이었다. 편지에는 서명 없이 발신인명은 에자키의 이름을 썼다.
4월 23일, 에자키 글리코에게 1억 2000만엔을 요구하는 협박장이 도착한다. 현금 수수일을 4월 24일로 지정됐지만 레스토랑에서 메이신 고속도로 스이타 휴게소, 전화박스와 현금을 주고 받을 운전자를 차례로 바꾸었지만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같은 날, 언론사에 2번째 도전장이 날아왔으며, 이후 범인 집단을 '괴인 21면상'을 자칭하게 된다. 이 네이밍은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 소년 탐정단 시리즈에 등장하는 괴인 20면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5월 31일 에자키 글리코로 3억엔을 요구하는 협박편지가 온다. 6우러 2일에 셋쓰 시내의 레스토랑 주차장에 3억엔을 실은 차를 둘 것을 지시. 6월 2일, 오사카부 경찰 본부 형사부 수사 제1과는 특수 사건계를 중심으로 30면 체재로 범인을 기다린다. 트렁크 뒤에 은신한 수사관이 스위치를 눌러 엔진을 정지시킬 수 있는 수레를 주차장에 두고 주변에는 특수사건계가 전개됐다.
20시 45분경, 주차장에 수상한 남자가 나타나 그대로 차에 오른다. 트렁크의 수사관들은 무전기 고장으로 연락이 되지 않아 예정된 지점보다 빨리 엔진을 정지시켰다. 특수 사건계의 수사 차량 몇 대에 포위되어 남자는 붙잡혔다. 그러나 남자는 범인으로부터 위협받아 주차장의 차를 타고 다른 지정 장소까지 운전하도록 지시받아 사건과는 무관계하다고 판명. 특수 사건계의 수사관 몇명은 남자가 갈 예정이었던 지정 장소에 수사 차량을 빠르게 보내자, 수상한 차량 1대가 달리려고 했기 때문에 추적. 그러나 국도 1호선 교차로에서 놓치고 만다.
6월 26일, 납치범이 매스컴에 도전장을 보내 '아이를 울리면 우리도 곤란하다 에자키 글리코를 용서한다'며 에자키 글리코에 대한 협박 수습 선언을 한다. 이 도전장에서 이들은 유럽에 간다, 내년 1월에 돌아오겠다고 해외 도피를 시사했으나 훗날 또 다른 도전장에서 경찰이 시끄러워서 못 갔다, 일 좀 하다가 곧 갈 생각이라며 해외 도피를 사실상 단념했다.
에자키 글리고 본사 방화 사건
1984년 4월 10일 20시 50분경, 오사카부 오사카시 니시요다가와구의 에자키 글리코 본사에서 방화가 발생. 불이 난 곳은 공무부 시작실이며, 불은 작업자 탈의실에도 옮겨 붙었다. 21시 20분경, 본사에 약 3km 떨어진 글리코 영양식품에서 차고에 세워져 있던 승합차가 방화된다. 이곳은 바로 꺼졌다. 범인은 휘발유가 든 용기에 천을 넣고 불을 붙였다. 불이 난 직후에는 모자를 쓴 괴한이 가방을 안고 달아나는 것이 목격됐다.
효고 청산가리 과자 살포 사건
1984년 5월 10일에 마이니치 신문, 요미우리 신문, 산케이 신문, 아사히 신문 등 4개사에 괴인 21면상으로부터 '글리코 제품에 시안화나트륨을 넣었다'고 도전장이 도착한다.
도전장에는 전국에 살포할 것이라는 예고가 있었으며 도전장의 끝에는 '글리코를 먹고 무덤으로 가자'고 까지 적혀 있었다. 그 사태를 두고 대형 슈퍼는 글리코 제품의 철거를 시작했다.
네야가와 아베크 습격 사건
1984년 6월 2일, 글리코 협박 사건으로 지정된 레스토랑 주차장보다 약 2.8km 떨어진 네야가와시에서 상사 회사에 근무하는 남성과 동료, 연인인 여성이 차로 데이트하고 있었다. 그러나 20시 15분쯤, 정차중에 남자 3인방에 습격당한다. 남성은 전직 자위관으로 완력에는 자신이 있었으나 3대 1은 당해낼 수 없었다. 3인방은 남성이 저항하지 않을 때까지 구타를 계속한 뒤 차에 태우고 검은색 포대를 씌웠다.
1명은 다른 차로 여성을 데려갔고, 남은 2인조가 남성의 차에 탑승. 남성에게 글리코 협박 사건에 대해 지정된 레스토랑의 근처까지 운전하지 않으면 여성의 생명을 보증하지 않는다고 협박받아 범인이 시키는 대로 행동. 식당 근처까지 운전하고 내려졌고, 주차장에 있는 차를 타고 다른 지정 장소까지 운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후, 이 남성은 오사카부 경찰본부 수사 1과에 범인으로 오인되어 신병이 확보됐으나 조사 중 사건과는 무관한 것으로 판명되어 오인 체포되지 않고 바로 방면됐다. 한편, 여성은 다른 차에 태워져 21시 30분경에 내려졌다. 여성은 범인으로부터 택시비로 2000엔을 건네받았다.
6월 3일 새벽, 남성의 차가 네야가와시의 신사의 참배하러 가는 길에 버려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마루다이식품 협박사건
1984년 6월 22일, 오사카부 다카츠키시의 마루다이 식품에 협박장이 도착한다. 내용은 글리코처럼 똑같이 당하고 싶지 않으면 5천만엔을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범인은 이 뒷거래에 응하는 신호로 파트 종업원 모집의 신문광고 게재를 요구, 타카츠키시의 상무 집에 현금을 보스턴백에 준비하고 대기하도록 요구. 오사카부 경찰 본부에 통보한 마루다이는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1984년 6월 28일 20시 3분, 범인에게서 전화가 온다. 여성에 의한 녹음으로 지정 장소에 오도록 지시.
오사카부 경찰본부 특수사건계 형사 7명이 마루다이 사원 행세를 하고 지정 장소에 가자, 지정된 시간의 교토행 열차를 타고 왼쪽 창문에 깃발이 보이자마자 차창에서 돈을 채운 보스턴 백을 집어 던지라고 지시하는 문자 지시서가 있었다.
형사는 보스턴백을 던지지 않고 종점 교토역까지 갔다. 형사 중 한명은 의심스러운 남자를 발견. 여우눈의 수상한 사나이는 마루다이 사원을 연기하고 있는 형사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형사들이 타고 돌아오는 전철에도 여우눈 사나이가 올라탄다. 형사들은 여우눈 사나이를 경계한다. 그러나 현금을 주고받을 때 현행범으로 체포하여 일망타진 방침을 세운 수사본부는 형사에게 체포 권한을 주지 않고 명령이 있을 때까지 접촉을 제한해 더는 할 수 없었다. 결국 여우눈 사나이는 역에서 내려 개찰구를 빠져나온 혼잡한 틈을 타 형사는 여우눈 사나이를 놓쳤다.
7월에도 마루다이 식품 이사 집에 현금을 요구하는 협박장이 도착한다. 7월 6일 20시 7분, 아이의 음성 녹음으로 지정장소로 오도록 지시. 장소 변경은 4차례나 되었고, 마지막 지정장소에 현금을 채운 가방을 두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결국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모리나가 제과 협박 사건이 발각된 뒤인 11월에야 범인이 매스컴에 보낸 편지에 다카츠키시의 식품 회사를 협박했다며 '나빠도 좋다, 괴인 21면상처럼 되어준다면' 이라고 마루다이 식품의 개치카피 '장난꾸러기라도 좋다, 씩씩하게 자라기를 바란다'는 문구로 범인이 마루다이식품을 협박한 사실이 폭로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모리나가 제과 협박 사건
1984년 9월 12일 아침, 오사카부 오사카시의 모리나가 제과 칸사이 판매본부에 몇 천만엔을 요구하는 협박장이 도착한다. 협박편지에는 글리코와 같은 꼴을 당하기 싫다면 1억엔을 내라, 요구에 불응하면 제품에 청산가리를 넣어 매장에 둘 것이라고 적혀 있었고, 청산가리가 들어간 과자가 동봉되어 있었다. 협박 편지에는 글리코가 테러범들에게 6억엔을 지불한 것으로 적혀 있었지만, 진위 여부는 가릴 수 없다.
9월 18일에 범인으로부터 칸사이 지사에 전화가 왔으며, 아이의 목소리로 현금 수수 장소를 지정한 내용의 녹음을 5회 반복 재생했다. 이후 지정된 장소에 가면, 다른 지정된 장소에 현금을 두라는 지시를 받았고, 현금을 두었는데도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전화는 10월 11일 일반에 공개됐다.
2부2현 청산가리 과자 살포 사건
1984년 10월 7일부터 10월 13일에 거쳐 오사카부, 효고현, 교토부, 아이치현의 슈퍼마켓과 편의점에서 수상한 모리나가 제품이 잇따라 발견되었다. 에자키 카츠히사가 당시 거주하던 자택 바로 옆에 있는 편의점도 타깃으로 삼았다.
'독이 들어서 위험해, 먹으면 죽는다. 괴인 21면상'이라고 적힌 종이를 붙인 모리나가 제품이 놓여 있었고 과자안에 청산가리가 섞여 있었다. 청산가리 과자는 13개가 발견되었다.
얼마 전인 10월 8일에는 한큐 백화점 등에도 모리나가 제품을 두지 않도록 요구하는 협박장이 도착했다. 이 협박편지에는 '우리를 거역했으니 모리나가를 찌부러뜨리겠다'고 선언했다.
10월 15일에는 NHK 오사카 방송국에 청산가리 알약이 배달되었다. 신문 각사에 보낸 도전장에는 이 청산가리로 몇명을 죽일 수 있는가 하는 퀴즈를 내고 상품은 청산가리 과자 모리나가 제품, 수신인은 형장 총무부 기획과장 마마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하우스 식품 협박 사건
1984년 11월 7일, 하우스 식품공업 총무부장 집으로 협박장이 도착한다. 우라카미 이쿠오 사장 앞으로 온 협박편지는 현금 1억엔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인도 날짜는 11월 14일, 장소는 교토 후시미구의 식당으로 지정했으며, 또 다른 협박편지에는 청산가리 하우스 스튜와 에자키 글리코 에자키 카츠히사 사장을 납치 감금하면서 녹음한 사장의 목소리 테이프가 동봉되어 있었다.
11월 14일 지정된 레스토랑 주차장에는 1억엔이 실린 차량을 대기시키고, 차량 내에는 하우스 사원으로 변장한 오사카부 경찰본부 특수사건계 형사가, 주변에는 교토부 경창본부 형사부 형사가 다수 배치됐다.
20시 20분, 협박편지의 예고대로 범인이 총무부장 집으로 전화를 건다. 여자아이의 목소리 녹음으로 전달 장소를 지정. 이것을 기회로 합동 수사 본부는 오사카・교토에 형사를 다수 배치했다. 지정장소에 가면 다른 장소를 지정하는 메모가 있었고, 장소 변경은 4번 반복됐다. 얼마 전, 메이신 고속도로 교토 미나미 인터체인지 부근에서 경계중인 교토부 경찰 본부 형사가 여우눈 사나이를 발견, 합동 수사 본부에 보고한다. 이날 여우눈 사나이는 3차례에 걸쳐 형사에게 목격된다. 몇 차례 장소 변경 지시에 따라 현금을 실은 차량이 오츠 휴게소로 향했다.
시가현 경찰 본부에는 합동 수사 본부로부터 현금 수수의 수사 공조가 요청되고 있었지만, 메이신 고속도로 구역 내는 오사카부 경찰본부원을 배치하므로 메이신 고속도로로 들어가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시가현 경찰 본부는 돌발 사안에 대응할 수 있도록 형사부 수사 제1과 형사 2명을 오츠 휴게소에 배치한다. 그리고 오츠 휴게소에 배치된 형사는 여우눈 사나이를 발견한다. 여우눈 사나이는 미행 점검을 하거나 벤치에 뭔가를 붙이는 등 특이한 동향이 있었지만, 직무 질문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형사는 그대로 철수했다고 한다.
시가현 경찰 소속의 형사가 철수한 후, 오츠 휴게소에 도착한 오사카부 소속 형사는 현금 수송차의 상태를 묻는 수상한 사람을 목격한다. 수상한 사람의 인상착의는 마루다이 협박사건에 목격된 여우눈 사나이와 일치. 그러나 형사들이 미행이나 직무질문의 권한을 부여받지 못해 여우눈 사나이는 그대로 일반 도로 쪽으로 빠져나갔다.
현금 수송 차량은 지시대로 쿠사츠 주차장으로 향했다. 거기서 나고야 쪽으로 가다가 하얀천이 보이면 하얀 천 아래 캔에 넣은 지시서를 보라는 지시를 받는다. 현금 수송차량이 도착하기 전에 흰색천이 쿠사츠 휴게소에서 동쪽으로 5km 지점의 도로 옆 방호 펜스에 설치된 것이 발견됐다. 도로 관리국의 순회 기록에 의하면, 14일 20시 50분부터 21시 18분 사이에 설치된 것으로 판명. 하얀천이 붙여진 방호 펜스 부근에는 무선 통신이 불가능한 장소였기 때문에 합동 수사 본부에 있어서는 최악의 전개가 되었다. 합동수사부는 교차 부분을 봉쇄했지만, 문제의 빈 깡통이 없었다. 범인인 듯한 남자도 보습을 보이지 않아 22시 20분에 수사는 중지되었다.
한편, 하얀천이 있던 장소 아래 부근에서 경찰차가 순찰을 돌다가 일련의 사건 수사를 보르는 시가현의 관할서 외근과 직원이 밤인데도 라이트를 켜지 않은 수상한 흰색 라이트 밴을 발견. 직원이 직무를 묻기 위해 흰색 승합차에 달려가 손전등을 비추자 운전석에 남자가 있었다. 그때 흰색 밴은 갑자기 출발, 경찰차와 격렬한 자동차 추격전을 벌이며 경찰차를 따돌렸다. 21시 25분 흰색 밴이 발견되었지만 남자의 모습은 없었다. 흰색 밴은 11월 12일 도난당한 차량으로 판명되었다. 경찰차가 수상한 차의 전방을 막듯이 정차하지 않고, 옆으로 댄 것을 실책으로 지적하는 논조도 있었다. 외근과 직원은 책임을 지고 후에 사직했다.
11월 19일, 하우스 식품공업 과장에게 협박장이 도착한다. 11월 14일 현금 수송차 감시 상황이 적혀 있었다. 지금은 모리나가를 상대로 하고 있으니 한가해지면 연락한다고 쓰여 있어 사실상 협박 중지 선언이라고도 받아 들일 수 있었다.
12월 11일, 순찰차에 탔던 3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작성된 수상한 차량의 운전기사 캐리커처가 공개되었다.
후지야 협박사건
1984년 12월 7일, 후지야의 노무부장 집으로 협박장이 도착한다. 협박장에는 테이프와 청산가리가 동봉되어 있었다.
12월 15일, 다시 협박장이 도착. 12월 23일에 오사카 우메다 백화점 매장에서 2000만엔을 뿌릴 것을 요구. 후지야는 이행하지 않았다.
12월 26일, 도쿄 슈퍼 사장 집으로 협박장이 도착. 1월 5일에 후지야가, 이케부쿠로 빌딩 옥상에서 2000만엔을 뿌릴 것을 요구. 후지야는 이행하지 않았다.
1985년 1월 11일에 후지야 협박사건이 처음으로 보도되어 괴인 21면상이 후지야를 협박한 것이 드러났다. 덧붙여 사건 발생 직전인 12월 4일에 아마추어 무선 7 MHz 오프 밴드 (지정 범위외의 주파수)에서 '21면상, 여기는 타마사부로' '약은 준비되었나' '하나, 둘, 하나, 여섯 (12월 15일로 추정된다) 왕복 항공권은 확실하게 받아서 R6로 갈 경우엔 당일치기로 반드시 안 붙잡히고 돌아오도록' '후지야는 역시 돈을 안 내는 군, 후지야는 포기하는 게 좋겠어' 등의 21면상과 타마사부로 두 명의 통신이 홋카이도 이와이추군의 아마추어 무선가에 의해 우현히도 감청 녹음되었다. 수사 본부는 범인 집단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수사를 벌였으며 일부는 언론을 상대로 공개됐다.
도쿄 아이치 청산가리 과자 살포 사건
밸런타인데이 직전인 1985년 2월 13일 언론사에 밸런타인데이 분쇄를 주장하는 도전장이 도착한다. 도쿄와 아이치현에서 '독이 들어 위험'이라고 적힌 라벨이 붙은 청산가리 초콜릿이 잇따라 발견된다. 청산가리가 들어 있지 않은 것에는 '독 없음 안심'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사건에서는 협박의 대상이 된 적 있는 글리코, 모리나가, 후지야의 것 외에 메이지 제과와 롯데의 초콜릿도 포함되어 있다.
스루가야 협박 사건
1985년 2월 24일, 언론에 모리나가 제과에 대한 협박을 종결시키는 휴전장이 날아들었다. 그 직후인 3월 6일, 와카마현의 노포 화과자 회사인 스루가야에 5000만엔을 요구하는 협박장이 도착한다. 그러나 3월 8일 범인으로부터 현금 수수를 연기한다는 통고가 도착. 그 후, 범인으로부터 스루가야에의 연락은 없었다.
사건의 종식
1985년 8월 7일, 하우스 식품사건에서 수상한 차량을 놓친 시가현경 본부장이 자신의 퇴직날에 본부장 공사의 뜰에서 분신자살을 한다. 유서는 남아 있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실태에 괴로워했던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하우스식품 사건의 실수에 대한 책임을 모두 지게 된 것에 항의하기 위한 자살이었다는 설도 있다.
8월 12일, 범인측에게서 '식품 회사 괴롭히는 거 이제 그만둔다'라는 종식 선언이 보내졌다. 이유는 5일전에 자살한 시가현경 본부장에게 보내는 부의금 대신이라고 밝혔다.
협박편지를 받은 회사 중 하나였던 하우스 식품공업 사장 우라카미 이쿠오는 사건의 종식을 이 회사의 창업자이자 선대 사장인 아버지의 묘 앞에 보고하기 위해 8월 12일 일본항공 123편에 탑승했다가 추락사고로 희생되었다. 이 종식 선언 이후, 완전히 범인의 움직임이 사라졌다.
1994년 에자키 글리고 사장 납치 사건이 공소시효를 맞아 수사본부 체제는 대폭 축소되었다. 2000년 2월 13일 0시 도쿄 아이치에서 청산가리 과자 살포 2건의 살인 미수 사건과 이와 관련된 28건 모두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 사건 수사에 관련된 수사 인력은 130만 1천 명, 수사 대상은 12만 5천명으로 알려져 있다.
관련 사건
쇼와 53년 테이프
사건 발생 6년 전인 1978년 8월 17일, 글리코에 돈을 요구하는 테이프가 글리코 상무에게 보내진 사건. 1시간 미만의 테이프 내용은 부락해방동맹 간부를 자칭하는 초로의 남성 목소리로 과격파 학생이 에자키 납치, 글리코 방화, 청산가리 과자 살포 등의 범행 대신에 글리코에 3억엔을 요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범행을 억제할 수 없어도 3억엔의 요구액을 1억 7500만원으로 감액가능하다며 돈을 요구, 응한다면 지정된 수법으로 신문 광고를 내기로 되어 있었다. (글리코는 응하지 않았다.) 에자키의 납치, 글리코 방화, 청산가리 과자 살포, 연락으로 신문광고를 사용하는 등, 훗날 글리코에 대한 범행을 예고하는 것과 같은 내용이었다.
이 테이프가 도착하기 2년 전부터, 에자키 글리고 상무 집에 황건족으로 자칭하는 인물이 편지와 전화로 협박을 계속하고 있었다고 한다.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의 수사본부는 발신인을 사건의 범인 집단의 일당으로 단정하고 범인 집단의 일원으로 지목된 인물의 목소리를 감정 재료로 삼았다. 동시에 이 테이프의 존재가 범인 집단의 과격파설의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1993년 말에 효고현경이 53년 테이프를 1분 정도로 편집해 공개했다.
가짜 야간 금고 사건
1973년 (쇼와 48년)에 오사카에서 일어난 오사카 가짜 야간 금고 사건도 글리코・모리나가 사건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1984년 9월 18일에 모리나가에게 1억엔을 요구했을 때, 맨홀 위에 둔 옷 상자의 밑에서 1억엔을 탈취하는 속임수 수법이 가짜 야간금고 사건과 유사했다.
타이레놀 살인 사건
타이레놀 캡슐에 청산가리를 혼입한 무차별 살인 사건.
사건의 특징
처음엔 단순 납치사건으로 여겨졌지만 대형 식품회사의 잇따른 협박, 실제로 청산가리가 들어간 식품이 살포되는 등 당시 사회에 미친 파장은 엄청났다.
기업 협작 편지와는 별개로 도전장을 신문사와 주간지에 보내고, 그 내용은 경찰을 도발하거나 조롱하는 내용이 많다. 범행의 유류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유류품이 대량으로 광범위하게 유통된 상품이었기 때문에 범인을 특정짓지는 못했다. 괴한들의 차량에서 채취된 EL로 불리는 특수 전자부품 폐기물부터 수사가 이뤄졌지만 범인으로 이어지는 성과는 얻지 못했다. 범인도 종식 선언 후에는 일절 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 경찰 발표에서는 범인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일련의 범행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범인측은 1984년 9월 12일에 모리나가 제과에 보낸 협박장에서 글리코가 6억엔을 지불했다고 암시하고 있지만, 글리코를 비롯하여 피해를 본 업체는 돈의 지불을 부정하고 있다. 일설에는 협박을 받은 기업의 주가가 요동쳤고, 그로 인해 이익을 얻었거나 주가 조작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는 설도 있다.
협박사건에서 검거 단서가 많은 범인과 피해자와의 접촉에서는 요구를 전하는 전화에 아이의 목소리를 사용하거나 현금 수수에 무관한 시민을 구금 협박 후 수취인으로 삼는다는 기존 상식을 벗어난 수법으로 이 역시 수사를 어렵게 했다. 기업으로부터 범인에게의 연락 수단에 대해서는, 범인이 기업에 대해서 요구에 응하는 신호로서 지정된 방법의 신문 광고를 낼 것을 요구한 것이 밝혀졌다.
범인 집단에 의해 경찰 무선이 감청되고 있었다. 당시 경찰 무선은 주파수만 맞추면 일반인도 쉽게 감청이 가능한 FM(아날로그) 방식이 주류였고, 수신기기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미 경시청에서 일부 도입이 시작되어 있던 감청을 당해도 대화 내용을 알 수 없도록 암호화된 디지털 방식으로의 조기 전면 이행을 추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글리코・모리나가 사건 수사에서는 경찰은 감청을 경계하고, 당시 경시청에 몇 대 없었던 디지털 방식의 경찰 무선으로 연락을 취했다.
경찰이 살인 미수 사건으로 수사한 청산가리 식품에 관해서도 '독이 들어 있던 식품에는 반드시 '독이 있어 위험하다 먹으면 죽는다'는 종이가 붙어 있었으므로 죄상에 해당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이 있다. 이 점의 미비를 보완하기 위해 글리코법과 유통식품의 독극물 혼입 방지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었다.
범인은 1년 반 동안 경찰에는 도전장, 기업과 언록사에 협박장과 도전장 총 144통을 보냈다.
결과적으로 독이 든 식품에 의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고, 납치 방화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없었다. 범인은 같은 시기에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경시청 광역 중요 지정 115호 사건이나 로스 의혹에 대해서도 언급을 학 있다.
범인상의 추측
이 사건의 범인에 대해서는 북한 공작원, 오사카 가짜 야간 금고 사건의 범인, 주가조작을 노린 조직원, 전직 또는 현직 경찰관, 좌익 활동가 출신 등 각종 음모설이 많으며 아직까지 논란은 그치지 않고 있다. 여우눈 사나이로 불리는 수상한 사람의 캐리커처도 제작됐다.
사건 당시 오사카부 경시청 본부장이었단 요카타 오사무는 쇼와 한자릿수 세대의 지도자에 실행범 그룹이 서너명이며 여자도 포함되는 집단으로 보았다.
글리코 관계자설
에자키 집과 글리코 내부 사정과 범인 집단이 연결되어 있다는 설. 구체적으로 에자키 납치의 실행범이 에자키의 장녀 이름을 부른 것. 에자키 납치의 몸값 요구 협박장으로 사장의 운전기사 이름을 지명한 것.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글리코의 관련 회사를 알고 있던 것, 에자키를 수방 창고에 감금했을 때에 에자키에게 입혔던 코트가 전쟁 전부터 전쟁중에 걸친 에자키 글리코 청년 학교의 것과 비슷했다. 그밖에도 인질을 잡거나 방화를 한 점, 협박장에서는 글리코 이외의 회사 사장을 하가, 마츠자키, 우라카미, 후지이 성으로 쓰는 가운데 에자키 사장만 카츠히라라고 이름을 쓴 점 등 다른 기업을 협박했을 때는 없는 특징이 있다는 점에서, 집단 중에 글리코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닌 것인지 말하고 있다. 이 밖에도 쇼와 53년 테이프의 존재도 글리코에 대한 원한이 원점이라는 설의 보강재이다.
주가 조작설
주가 조작설의 경우, 1984년 1월 745엔이던 글리코 주식은 사장 유괴 및 공장 방화 사건 다음날인 5월 17일에는 598엔까지 떨어졌다. 즉, 상품의 불신에 의한 주가 하락을 전재로 하면, 결과 24.5%의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덧붙여 사건의 종식 선을 받아 값이 돌아오는 것도 전제로 하면 바닥값이라고 생각되는 시점에서 구매하여 한층 더 이익도 얻을 수 있는 계산이 된다.
주간 현대에서 주식 정보 담당 기자를 한 적이 있는 작가 미야자키 마나부는 단순하게 시장에서 주식 매매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에 자사주를 매입하게 하는 주선으로 100억엔의 이익을 얻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미야자키 마나부에게 임의청취한 형사도 이 설을 미야자키에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서도 현금 탈취는 주가조작에 의한 이익이 목적이었을 가능성을 보고 사건 관련 기업의 공매도 환매로 뚜렷한 움직임을 보인 인물이나 단체는 철저히 단속했다. 그중에서도 당시 비디오 셀러라고 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그룹이 최대 중요 감시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었다고 한다.
피차별부락설
피차별 부락 관계자가 관여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 근거는 9월 18일 모리나가의 남자 아이 목소리에 의한 협박 테이프를 분석한 결과, 주변 환경의 소리 중에 피혁제품에 사용되는 독특한 재봉틀 소리가 들렸다는 것, 범인 집단이 사용한 것의 대부분이 소수파가 많은 곳 근처의 슈퍼 마켓에서 구매된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피차별 부락 관계에 대한 수사에 대해서 미야자키 마나부는 부락 해방 동맹이 항의를 하여 수사가 중단됐다고 밝혔다.
미야자키 마나부 설
범인 집단의 한명으로 지목된 여우눈 사나이와 흡사하다는 점, 과거에 언론사를 조작해 경찰과 적대했다는 점, 회사를 도산하여 빚을 지고 있었다는 점, 지리적 조건이나 아우트로와의 인맥으로 의심을 받았으나 알리바익 있었다는 점과 물증이 없다는 점에서 수사가 종결됐다. 미야자키 마나부는 '소문의 진상' 1985년 10월호에서 사건에 관해말하였고, 그 후 1996년에 낸 자서전에서 다루거나 글리코・모리나가 사건 가장 중요한 참고인 M을 저술했다. 그러나 마루다이 식품 사건과 하우스 식품 사건에서 여우눈 사나이를 실제로 2번에 걸쳐 목격한 유일한 수사원은 '의논할 가치가 없다'며 미야자키 마나부 설을 일축했다.
북한 공작원 그룹
사건 종결 후에 산케이 신문 1997년 7월 4일 조간과 주간문춘에 보도된 수사선상에서 부상한 북한 공작원 관계자 그룹. 1953년 테이프의 목소리를 닮은 효고현 무역회사 사장이 북한 비합법 활동의 배후로 그 주변에 여우눈 사나이와 비디오 속 남자를 많이 닮은 인물이 있었고 에자키 글리코 사장을 원망하는 북한 공작원이라는 증언이 있는 고고학자도 그룹에 속해 있었다. 범인 집단이 글리코에 요구한 100kg 금괴를 갖고 있어 조사가 이뤄졌다. 다만 이는 북한의 국가적 모략이 아니라 북한의 금광산 개발 투자 실패로 돈 마련에 어려움을 겪은 북한 공작원 일당의 소행이 아니냐는 것. 그러나 그룹의 핵심으로 지목된 사장은 1987년에 이미 사망, 1998년 주동자로 지목된 인물의 목소리 감정과 그룹 내에서 여우눈 사나이나 비디오 속 남자로 의심됐던 인물의 소환 조사 결과, 다른 사람으로 밝혀져 수사가 종결됐다.
전직 폭력단 조장 그룹
1990년 무렵부터 수사 본부가 타깃으로 좁힌 것이 폭련단의 전직 조장의 실업가를 중심으로 한 그룹이다. 전직 조장이 1979년 글리코에게 5억엔을 협박하려다 거부당한 과거 있는 것, 조장의 은행 계좌에 피해를 당한 기업 관계자로부터 3억엔으 입금이 있었던 것, 범행에 사용된 것과 동종의 일문 타자기나 택시 불하 차량을 친척이 소유하고 있는 것, 글리코에 원한을 가진 인물이 주변에 있던 것, 쇼와 53년 테이프에 등장하는 인물과 접점이 있는 것 등이 의혹의 근거가 되었다. 수사본부는 1992년 3월에 전직 조장을 비롯한 그룹에게 임의 동행을 요구해 조사를 실시하였지만, 혐의를 인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물증도 없었다. 주요 멤버에게는 알리바이도 있었다. 수사 본부가 마지막에 총력을 기울여,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의 수사 사상 최대라고도 불리는 그룹 수사였지만, 이것으로 사실상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의 수사는 종료되었다.
※ 기타
이 사건에서 에자키 글리코에 이어 협박을 받은 것은 마루다이 식품이었지만, 당초 이 사실은 합동수사본부에 의해 은폐되었고, 3번째 모리나가 제과가 협박당한 사건을 마이니치 신문이 특종으로 내놓으면서 연속 협박이 발각되어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당국은 당초 편승범이자 오보라는 대도를 취했지만 이후 범인측의 성명문으로 확인되었다. 사건이 글리코・마루다이 사건이 아닌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이라 불리는 것은 이 때문으로 보여진다.
이 사건으로 에자키 글리코에 이어 협박을 받은 것은 마루다이식품이었지만, 당초 이 사실은 합동수사본부에 의해 은폐되었고, 3사째에 모리나가 제과가 협박당한 사건을 마이니치신문이 특종해 연속 협박이 발각되어,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당국은 당초, 편승범이자 오보라는 태도를 취했지만, 그 후 범인측의 성명문으로 확인되었다).사건이 「글리코·마루다이 사건」이 아닌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 때문으로 보여진다.
범인 집단은 요미우리 신문사에 보낸 도전장에서 30여 년 전인 19955년 모리나가 제과 관련회사인 모리나가 유업이 일으킨 모리나가 비소 밀크 중독 사건으로 예로 들며, 독의 무서움을 모르고 있지 않냐며 모리나가 제과를 도발했다. 같은 도전장에서는 메이지 제과가 당시 매출 1위로, 글리코 다음은 메이지를 노릴 거라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메이지를 표적으로 하는 것은 그만두었다는 취지도 쓰여져 있다.
작사가 카와우치 야스노리는 주간 요미우리 지면으로 범인에게 사비 1억 2천만엔을 제공할 테니 이 사건에서 손을 떼라고 했지만 범인 그룹은 거절했다.
아마추어 무선용 144MHz 무선기를 수신 개조하여 경찰 무선을 감청하거나 후지야 협박 사건 때 무선으로 주고받는 등 무선 통신에 대한 지식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전문가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 아마추어 무전기의 일부 기종은 기판상 간단한 공작으로 광대역 수신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들 기종은 아마추어 무선기를 가게에서 수비게 구입할 수 있었고, 아마추어 무선 입문인 전화급용이었다. 전화급 아마추어 무선기사는 한때 6살 어린이도 딸 수 있는 국가 자격이라고 해 물의를 빚었다. 개조 방법 등을 게재하는 라디오 라이프 잡지가 있었으므로 이런 면에서 범인을 압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우스 식품 협박 사건에서는 인질극 이외에는 극히 드문 보도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이 협정에는 의문의 의견이 분출하였다. 먼저 일본신문협회에 속하지 않는 신좌익계열의 인민신문이 보도하고, 이어서 일본잡지협회에 속하지 않는 소문의 진상 기사가 결정타가 되어 소문의 진상 발매일에 사건 미결에도 불구하고 보도협정은 해제되었다. 이 보도협정건은 범인 집단도 보도 자유의 자살이 아니냐며 비판했다.
범인의 편지에도 등장하는 음향연구소 소장 스즈키 마츠미는 TV 방송에서 전화 음성을 분석한 결과, 녹음된 테이프로부터 흐르는 협박문의 발신원인 공중 전화, 그 협박문을 낭독했다고 생각되는 아이, 그 목소리를 녹음한 하이, 그 목소리를 녹음한 사투리까지 특정할 수 있었지만, 그 후의 수사 진전은 없었던 것 같고, 이 건의 진상은 모른다고 말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생각되는 아이에 대해서는 변성기도 있기 때문에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1985년에 일어난 오사카 연속 토막 살인 사건에는 범인이 괴인 22면상이란 범행성명을 경찰에 전했다. 처음엔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의 괴인 21면상을 흉내낸 장난으로 추정됐지만, 도착한 편지에는 당초 공개되지 않았던 살해 내용의 상세한 기술이 있었기에 범인의 편지인 것으로 판명. 범인은 1995년에 붙잡혔다.
1999년 12월에 오사카부 셋츠시에서 발생한 몸값 유괴사건이 벌어져 수법이 글리코・모리나가 사건과 공통점이 지적되었으나 2000년 4월에 범인이 체포되어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 사건으로 글리코와 모리나가는 큰 타격을 입었다. 제품은 일시 철거되어 광고도 반년에 걸쳐 자숙. 모리나가는 당시 방송되고 있던 TV 애니메이션 근육맨의 스폰서를 하차했다. 한편 글리코도 오랜 세월 스폰서를 맡은 라디오 프로그렘을 하차. 그 외의 스폰서는 하차하지 않았지만 자숙했다. 이후 두 회사는 특별 CM을 방송하여 광고 재개를 완수한 다음, 로고타입을 변경하게 된다.
이 사건 이후, 에자키 글리코 제품의 포장은 개봉되었을 경우,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 한때는 상품에 Glico 안전 포장 로고가 들어간 필름 포장을 걸기도 했다. 같은 시기에 파라콰트 연속 독살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여 식품업계 전체가 포장을 불가역한 것으로 해 나가는 흐름이 되었다. 관계자를 잠복 수사하던 경찰관에 의해 사건 당시 아버지가 모리나가 사장이었던 아키에와 아베 신조가 교제하고 있는 모습이 발각되었다.
유사 사건
이 사건과 마찬가지로 시판 음식에 독극물을 혼입한 사건으로는 1977년 청산가리콜라 무차별 살인사건이 있다. 이 사건으로 도쿄에서 2명이 사망, 오사카에서 1명이 병원 이송되었다. 그 후 혼입 대상을 콜라에서 초콜릿으로 변경한 사건이 발생했으나 모두 살인 미수로 그쳤다. 그 중 2월 14일 사건은 사회적인 메시지를 남겨 본건으로도 이어지는 행위로 보았다.
1982년 미국에서 존슨앤존슨사의 타이레놀에 청산가리가 섞여 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발생한 1984년에는 괴인 21면상에 편승하여 모방법이 식품기업을 협박한 기업 공갈 사건이 31건 발생했지만 모두 적발됐다. (1984년 유일하게 적발되지 않은 것이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이다) 이후 사건을 모방한 범죄가 444건에 이르며 이 중 206건이 검거됐다.
1985년에는 니코틴이 든 제품을 살포한다는 위협을 받은 롯데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3천만엔을 지급하는 뒷거래에 응했다. 1986년에 다시 5천만엔의 지불이 요구되어 이번에는 경찰에 신고하고 당시 55세의 22호라고 자칭하던 남자는 7월 3일에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일단은 협박범에게 굴복해 뒷거래에 응한 롯데는 비판에 직면하였고 롯데는 고객의 안전이 제일이었다고 변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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