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그냥 시작하라.

     오랜만에 쉬게 되면 여러 계획을 세우곤 하는데, 늘 그렇듯 계획은 쉽게 무너진다. 아침부터 꼼지락거리며 부지런을 떨고 싶었지만, 잠에 취해 그러질 못했다. 실컷 잠을 자는 휴일. 얼마나 뿌듯(?)하면서도 한심한가. 그러다 문득 지난 휴일도 잠으로 대부분을 보낸 것이 떠올라 벌떡 일어났다.

    그래, 오늘은 무언가를 그냥 시작하겠어!

    대단한 무언가는 아니지만, 일단은 이부자리에서 뛰쳐나오는 것부터. 집 밖을 뛰쳐나오는 것부터 시작해야지.

    엄마와 함께 오랜만에 산책을 나섰다. 보통은 집부터 걸어 공지천 근처까지 갔다가 되돌아오지만, 오늘은 그 코스를 배신해 주었다. 룰루랄라. 조수석에 앉아 흥얼흥얼. 어미새 옆에서 조잘대는 아기새처럼 열심히 떠들다 보니, 춘천의 저~어기 반대쪽 세상, 서면의 춘천 애니메이션 박물관에 도착해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코로나19사태의 영향으로 임시휴관중인 박물관에서부터 산책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엄마의 손을 잡고, 앞뒤로 경쾌하게 흔들면서.

    월요일 대낮이라 산책을 즐기는 이도 드물어, 산책로는 거의 엄마와 내가 전세를 낸 느낌. 가끔 쌩쌩 스쳐가는 자전거를 탄 사람말고는 거의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햇빛은 따스했고, 강바람은 시원했고, 엄마의 온기가 내 손바닥에 그대로 느껴지는 그야말로 기분 좋은 산책이었다.

    춘천에도 봄이 왔다고 자신있게 말하기엔 무엇하지만, 그래도 내 가슴은 이미 '봄'이란 단어로 흠뻑. 주위를 둘러보니 봄꽃들이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산수유만 빼고.

     

    산수유의 노오란 빛깔에 잠시 넋을 놓고, 다시 길을 터벅터벅. 엄마와의 소소한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 바람에 일렁이는 강의 물결, 사방에서 작지만 또렷하게 들려오는 새의 지저귐, 기분이 좋은 나머지 덩달아 높아진 내 목소리, 대화 속에 피어나는 엄마의 웃음소리.

     

    집에서 나오길 잘했다. 엄마랑 같이 산책하길 잘했다. 참 잘했다. 빨간 색연필로 아주 크게 동그라미를 그려주고 싶을 만큼, 참 잘했다.

     

     

    벚꽃은 이제 며칠 후면 피어날 것 같다. 연분홍빛 꽃무리가 가지를 점령할 때가 되면 또 오자고 엄마랑 약속했다. 그 약속 꼭 지켜야지. 피곤하다는 핑계로 이불과의 진한 연애에만 푹 빠져 있지 말아야지. 엄마와의 연애를 더 즐겨야지. 엄마랑 함께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자.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은 나는 게 아니라 내는 것'.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러한 시간은 몇십분이라도 충분히 낼 수 있는 것.

     

    자이언트 고양이 옆에 선 엄마는 작고 귀여워. 사진 찍으려고 뛰어가는 엄마 뒷모습을 보며 나도 웃었다. 그런데 엄마 너무 작아서 얼굴이 거의 안 보이네. 괜찮아. 안 보이면 어때. 옆에 고양이가 있잖아. 그거면 충분해. 삶이란 그렇다. 매우 그렇다. 조금 내가 밑지면 어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는데.

     

     

    엄마가 만든 손뜨개 인형. 귀엽다. 차 뒤로 비치는 저녁노을의 주홍빛이 더해져 더욱 샛노래진 라이언 형제들. 언제 엄마 몰래 얘네들 옷을 벗겨놓아야지. 까르르, 까르르. 

     

     

    산책하면서 저녁 반찬으로 정한 미역줄기볶음을 만들었다. 이제 나도 미역줄기볶음 만들 수 있다. 어렵지 않다!

     

    촬영일 : 2020년 3월 23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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