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힐 수록 좋은 게 또 하나 있었군.

    19살 때 읽었던 책이 있었다. 제목은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마라, 모든 것은 사소하다. 약 20년이 흐른 지금, 나는 여전히 사소한 모든 것에 목숨을 걸고 있는 듯하다. 사소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거리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평온해지려 애를 써봐도, 그럴수록 상황은 오히려 악화되기만 했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자며 중얼거렸던 그 어린 날들. 그다음에 지침서처럼 곁에 두었던 책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였다.

     

    그래, 사소한 모든 것들, 사소하지 않은 그 모든 것들마저 내가 소유하지 않으면 된다는 마음이 되기 위해 나는 얼마나 무던히 애를 썼던가. 무소유를 외치면서도 내적으로는 끊임없이 변함없는 사랑을 갈구하는 인간이 여기 있다.

     

    모두에게 특별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전전긍긍했던 날이 있으면, 모두에게 먼지 한 톨만큼의 기억조차 남지 않기를 바라는 날이 있곤 했다. 버리고 싶은 것들, 끌어안고 싶은 것들. 버려야만 하는 것들, 내 품에 있어야만 하는 것들. 기억하지 않아도 될 일, 그리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일.

     

    나는 언제나 양손에 서로 붙으려고 애쓰는 것들을 들고 있다. 중간은 없고, 언제나 닥쳐오는 것은 극한의 상황뿐. 지금의 나는 그저 조용히 숨 쉬고, 조용히 이야기하고, 조용히 생각할 뿐이다. 누군가가 들어줘도 좋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도 좋은 나만의 것들에 대해서. 그냥, 이렇게 지내다가 가는 거다. 내 손에 든 것들을 조용히 바닷속으로 던져버리고.

    지천에 널린 행복들을 어루만져 봐.

    세잎의 클로버,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무성한 행복.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 무성한 행복을 헤치고 헤쳐, 네잎의 클로버, 행운만을 찾기 바쁜 현실. 

     

    2014년 4월 6일, 한없이 바라보았던 그날의 행복.

    비 내리는 오전 4시. 그 시간의 짧은 산책. 그 시간이 내뿜는 강렬한 힘, 보일듯 말듯 흩뿌리는 비, 비닐우산, 잠든 거리의 네온사인을 등지고 찰칵. 카메라는 좋은 구실을 만들어준다. 산책하는 김에 사진이나 찍어볼까. 10분 산책할 시간도 1시간 이상으로 만들어버리는 마력을 지닌 존재. 그날 새벽엔 참 좋은 사진들을 많이 찍을 수 있어 좋았더랬지. 

    그리고 우리가 늘 그러했듯이, 계절이여, HELLO AND GOODBYE. 언제나 영원한 이별이 없는 아름다운 만남이여, 헬로우 & 굿바이.

     

    강원도 양양, 낙산 해수욕장 발아래의 모래. 그리고 닳고 닳은 조개껍데기들.

    좋은 카메라가 곁에 있으면 흥이 나지만, 그렇지 않아도 충분하다. 이젠 휴대폰도 똑딱이 디지털 카메라 이상의 능력을 품고 있어서. 그리고 딱히 사진을 메인으로 하지 않는 산책길을 조금 멀리 떠날 땐 오히려 무거운 카메라는 짐이 될 뿐이다. 무게에 짓눌러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풍경들을 놓치기 쉽기 때문에. - 두물머리로 향하기 위해 전철 갈아타기 전. 

     

    어딜 가면 타인의 시선에 비친 내 모습은 늘 이렇다.  이 사진은 서울숲에서 찍힌 것으로 난 늘 꽃을 찍을 땐 주저앉는 것이 일이다. 누가 보든말든 절대로 허리만 엉거주춤 숙이는 일은 없다. 그리고 이렇게 찍은 사진들은 대략 아래 사진의 구도로 찍힌다. 

    X100T, 비가 내리는 날에 무작정 쏘다닌 덕분에 거리에서 빗방울을 머금고 있는 사랑초를 만날 수 있었던 2016년 9월 27일.

     

    서울숲에서

    7월 2일, 서울 어린이 대공원. 꽃봉오리란 말은 어쩌면 희망의 대체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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