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든 순간들을 사진과 글로 기록하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인생을 살고프다.

     

    사진 1. 서울 어느 길을 걷다가 호프집 앞에 놓여있던 '오셨쎄요.' 무언가 나의 취향이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촬영 카메라 : 후지 X100T

    글/사진 | 2017년 2월 10일

     

    무표정한 얼굴로 모니터만 바라보면서 일을 하다 보면 정말로 기계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어느 순간은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버립니다. 보통은 이걸 흔히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표현을 씁니다만, 사실 매너리즘의 시기가 있으면 사람은 두 분류로 갈리게 됩니다. 그것을 밟고 조금 더 높은 곳으로 도약을 하는 사람과 그 위에 에라이, 나도 모르겠다! 하고 드러눕는 사람.

    지치고 힘든 일상, 매일매일 반복되는 것들에 둘러싸여 무엇 하나 새로울 것 없는 하루,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고 먼데 자꾸만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남들이 철없고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볼 때, 앞에서는 더없이 살갑게 웃으면서 등만 돌릴라치면 어느새 험담으로 얼룩지는 때 등등.

    여러분.

    저와 함께, 우리를 불쾌하게 하는 그 모든 것들을 밟고 도약하지 않으실래요? 잠깐이라도 기분 좋게 웃어보지 않을래요?

    뭐, 저는 이런 마음으로 블로깅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나눌 수 있는 것을 내일로 미루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 블로그에 자주 오실 필요도 없고, 무리해서 공감을 누를 필요도 없고, 댓글을 남길 필요도 없습니다. 이웃 신청을 조금 까다롭게 받은 것에 대해서는 사실 죄송한 마음도 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영상은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볼 수 있으니까요. 저는 여러분이 이곳에서 잠깐이라도 웃다 가길 바랄 뿐입니다. 이곳이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그런 훈훈한 공간이 된다면 저는 그걸로 충분합니다.

    다만 제가 당부드릴 것은 "우리가 주고 받는 것은 오직 따스한 마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벌써 자정을 넘긴 시간이로군요. 오늘 하루도 잘 마무리하시고 편안한 함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진 2. 엄마의 빼어난 손뜨개질 솜씨 

     

    촬영 카메라 : 소니6000

    글/사진 | 2020년 4월 17일

     

    마음을 먹기까지가 쉽지 않을 뿐, 그 다음부터는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면, 머뭇거리게 됩니다.

    마음이 동할 때, 그 마음을 봉하지 않을 수 있도록 긍정을 보태요.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매우 적지만,

    곁에 오랜 시간 머물러주는 이의 존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대합니다.

    실질적인 옷깃의 스침은 없지만,

    우리의 모든 만남은 실재하는 것.

    무언가를 꼭 주고 받아야 성립되는 관계가 아니기에 불쑥 마음을 보내곤 합니다.

    그 불쑥 찾아온 마음에 부담을 느끼진 않을까, 하는 생각은 매번 듭니다.

    그래도 저는 이따금 저의 일방적인 마음 표현을 거둘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존재를 가벼이 여기고 있지 않습니다, 라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기에.

    이 글을 읽는 모든 여러분,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습니다.

    내일도 밝고 힘차게 시작해 보아요.

     

     

    사진 3. 행복아 와랏!

    글/사진 | 2018년 9월 10일

     

    행복아 (しあわせ)

    와라와라 (こいこい)

    어서와라 (やってこい)

    좋은 것을 나누면, 반드시 되돌아온다. 좋은 것은 세상을 두루두루 돌며 팽창한다. 마지막에는 지구보다 거대한 것이 되어 반드시 내게로 온다. 온다. 온다. 그렇게 믿고 사는 오늘이 행복하다. 나의 행복이 너의 행복이 되고, 너의 행복이 또 다른 누군가의 행복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조금 더 웃고, 조금 더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조금 더 고운 목소리를 내자.

    우리들은 때론 너무도 하찮은 존재라서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을 느끼곤 한다. 우리들은 때론 너무도 굉장한 존재라서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에 벌떡 일어나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곤 한다. 그 아무것도 아닌 것은 바로 우리들 마음에 있다. 그것도 아주 얇은 막으로 싸여 있다. 손쉽게 꺼내어 언제든지 손에 들고 삶의 무기로 쓸 수 있다. 그 전설 속의 절대 최강이라는 '행복'이라는 무기로.

     

     

    사진 4. 산책하면서.

    글/사진 | 2018년 5월 3일

     

    눈을 떴을 때, 오전 4시 27분이었다. 그대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달력을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5월 3일. 그리고 오전 내내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일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 밖에 TV가 켜지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을 보니 엄마가 일어날 때였다.

    엄마가 잠에서 깨 정신을 차리는 그 시간, 나는 항상 방문을 열고 나가 커피를 내린다. 그 행위가 내게는 비로소 아침이라는, 하루의 시작이라는 개념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엄마가 보는 TV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영화였다. 이제 막 시작한 영화 같았는데, 줄리엣 로버츠가 나오더니, 그다음 컷에 조지 클루니의 얼굴이 나타났다. 무슨 영화인지, 내 머릿속에는 정보가 없었다. TV 귀퉁이에 박힌 제목을 확인해 보니 머니 몬스터란 글자가 박혀 있었다.

    그때, 내 귀에 들려오는 엄마의 한마디.

    「어! 커피 선전하던 앤데! 」

    필시 조지 클루니를 보고 하는 말이리라.

    커피라 함은 네스프레소를 말함이리라.

    「조지 클루니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거야?」

    「아, 맞다! 조지 클루니! 빙신 같이 신발도 뺏기고, 커피도 못 마시고...」

    엄마가 본 커피 광고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웃음이 났다. 아침을 웃음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일에 몰두하다가 오늘은 산책을 좀 길게 다녀왔다. 11시 반 즈음에 나가, 집으로 돌아오니 2시. 2시간 30분의 산책은 매우 즐거웠다.

     

    사진 | 2018년 11월 13일 서울 광장시장 앞에서 찍은 달 사진

     

    사진 | 2020년 8월 25일, 동네 놀이터에서 찍은 나팔꽃 잎사귀가 하트하트

     

    사진 | 2020년 5월 24일, 아침에 내린 비.

    아침에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베란다에 내놓은 엄마의 다육이가 뿔뿔이 흩어져 운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글/사진 | 2017년 2월 14일

     

    나의 하늘은 아름답다. 너의 하늘은 어떠한가? 우리의 하늘은 또 어떠한가?

    하루에 하늘을 5번 정도 올려다보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글을 어디선가 접한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을 읽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과연 실로 그러한가? 그 궁금증은 결과적으로 제게 하늘을 평소보다 더 자주 올려다보게 하는 습관을 만들어줬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는 행위 자체가 행복을 불러오는 것일까요?

    사실 문장 그대로 해석하면 그런 의미에 가깝겠습니다만, 우리는 너무 삶에 충실한 나머지 많은 것들을 잊거나 애써 무시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언젠가는' '다음부터는' '나중에' '내일은 꼭' 이란 어휘가 우리의 말속에 얼마나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까요? 지금은 힘들지만, 내일은 웃게 될 거야. 지금은 여유가 없지만, 언젠가는 맘껏 하고픈 것을 하고 말 테야. 당장은 분하지만, 나중에 반드시 되돌려주겠어 등등. 우리는 어쩌다가 다음으로 미루게 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곳에 머물러 자신만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인생을 보냅니다. 그렇다 보니 매일 맞이하는 쳇바퀴 같은 일상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일탈을 꿈꾸고, 어디론가로 훌쩍 떠나버린다면 사회는 엉망진창이 되겠지요. 누구나 꿈꾸는 이상의 삶이 있고, 그 아래 자신이 구축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삶을 쌓아올립니다. 그 안에 모든 희로애락이 담겨있겠지요.

    지금 당장은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분노나 슬픔도 영원 앞에선 보잘 것 없이 무너지는 감정입니다. 우리는 감정에 충실히 살아가야 하지만, 그 감정에 지배당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한 마음과 마음이 만나도 충돌을 빚는 세상 속에서 감정에 지배당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매 순간 잘못된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되겠지요.

    그래서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는 습관'이 던지는 상징적인 의미는 '감정을 덜어내거나 깨끗하게 비워내라'라는 게 아닐까요?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타인을 상처 입히고, 타인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상처를 받습니다. 그 상처의 올바른 치료법은 무엇일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상처를 주거나 입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조금 더 배려하는 마음을 품는 거겠습니다만, 우리의 본심은 늘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나는 잘 하는데, 남이 문제야!"라고요. 혹은 "나도 잘못했긴 했지만, 상대방도 잘한 것 없어!"라든가요.

    인간의 모든 재앙은 '혀끝'에서 나온다고 하지만, 실은 그전 단계인 심장에서부터 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쾌한 감정을 품고, 그 감정을 배설하는 과정에서 혹시 더한 상처를 받거나 입고 있는 건 아닌지 깊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이 더 좋은 상황이나 관계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자신의 불쾌감을 씻어버리기 위한 것뿐인지를 구별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네, 우리는 '생각'과 '마음'을 구별해내야 합니다.

    남에게 나의 '생각'을 전할 때인지, '마음'을 전할 때인지를 구별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때론 타인의 생각이 자신에게 '독'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이런저런 말을 많이 쏟아내는 바람에 당최 이 인간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 싶을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만, 사실 굉장히 단순합니다. 하루에 한 번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겁니다. 드넓은 머리 위의 하늘로 차마 버리지 못하고 안에 쌓아두었던 좋지 않은 것들을 던져버리자는 겁니다.

    하늘은 바다입니다. 우리가 던져버린 것들은 바람결에 저 멀리 떠밀려 지구 반대편으로 가버릴 겁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안 해도 되지 않을까요? 돌고 도는 동안에 그런 것들만 좋아서 먹이로 삼는 바닷속 생물에 먹혀버렸을 테니까요.

     

    사진 | 2018년 5월 4일. 날씨는 화창했다.

     

     

    사진 | 2017년 12월 10일 눈 내리는 아침.

     

    오전 8시, 눈이 내렸다고 라인이 왔다.

    창문을 열어보니, 흰색으로 채색된 풍경이 시야에 들어와 바로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휴대폰 하나만 들고 집 밖으로 나왔다.

    행복냥코 한 마리를 손안에 움켜쥐고, 일요일 아침부터 기분 전환하기.

    아이의 마음으로 눈사람 만들어보기.

     

     

    글/사진 | 2017년 1월 24일 , 후지 X100T 촬영.

     

    I LOVE YOU (I L♥VE YOU)

    당신의 심장은 지금 사랑하고 있습니까?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사랑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순간이 있는 것처럼,

    매 순간 '사랑한다'고 말하는 습관을 가져보세요.

     

    '더 이상 사랑한다는 말에 인색하게 굴지 마세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목소리로,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목소리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에 젖은 목소리로,

    [사랑합니다.]

    [사랑해요.]

    [사랑해]

    이 말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글/사진 2017년 2월 1일, 서울에서

     

    웃으면 복이 와요, 그 말이 갖는 참된 의미는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웃고 싶지 않은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지요. 순간을 넘어 시기가 되기도 합니다. 웃음을 잃은 시기, '나'의 존재가 미미했던 시기, 도통 세상 모든 것에 재미를 붙일 수 없었던 암울기. 누군가는 그 시기를 넘겼고, 다른 누군가는 앞두고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절찬 암울기일 겁니다. 섣불리 위로를 할 수도 없고, 위로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인생은 여럿의 사람에게 영향력을 받을 수 있지만,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인생의 주체는 남이 아니고, 내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일에 솔직해지기는 힘들지만, 가능한 솔직하게 모든 일에 다가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내가 힘들면 그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자신만의 단칸방에 너무 오래 갇혀있으면, 문 밖의 화려한 계절의 춤사위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계속 괜찮아지자, 좋아지자, 행복해지자를 반복적으로 되뇌어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와야 이 모든 것이 시작되는 법이니까요.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웃고 계신가요?

    웃을 일도 없고, 사는 건 여전히 갑갑하고, 다가올 미래는 어둡기만 한 것 같아서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나요? 불투명한 시야를 뚫고 어디론가 전력으로 달려가고는 있는데, 그 길이 잘못될까 하루에도 몇 번씩 걱정이 앞서나요? 저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지구가 공전을 멈추지 않는 이상, 자전의 방향을 바꾸지 않는 이상 우리는 걱정과 불안의 뫼비우스 띠를 트랙 삼아 뛰어야 합니다. 걱정과 불안이 있기에 [행복]과 [웃음]이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 건 아닐까요?

     

    욜로(YOLO)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You Only Live Once. 인생은 한 번 뿐입니다. 욜로 라이프, 카르페디엠 같은 말이 던지는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한 번 뿐인 인생, 오늘을 즐겨라!라는 해석을 하는 분도 있겠지만, 저는 한 번 뿐인, 다신 오지 않을 인생, 지금 이 순간, 오늘을 소중히 하라!는 해석을 하고 싶네요.

     

    글 | 2017년 3월 14일, 사진은 상도동 밤골마을에 촬영차 갔다가 찍음.

     

    어쩐지 만신창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은 강렬한데 자꾸만 어딘가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몇 번인가 넘어졌다가 일어서는 사이에 심장도 같이 조금씩 충격을 받아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일까. 간단하게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들이 조금 더 높게 보이거나 더 멀어져 보인다. 그만큼 겁이 많아진 걸까?

    반대쪽에서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주면 좋겠다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럼 없던 용기도 솟아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 삶을 붙들고 홀로 이곳까지 왔기 때문에 이제와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동안 혼자서 꽤 고단했노라고.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어 강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함께 정신은 그만큼 위험천만할 정도로 부서지고 또 부서지는 중이었노라고.

    앞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면서도 자꾸만 뒷걸음질 치게 되는 시기. 익숙해서 좋았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지루하고 나른한 것들로 둔갑하고, 찬란한 빛으로 둘러싸였던 청춘은 어느새 한눈을 파는 사이에 지나쳐버린 몇 정거장처럼 저만치 뒤로 돌아가야만 엿볼 수 있다. 인생의 정체기, 길을 건너고 싶지만 좀처럼 바뀌지 않는 빨간 신호등. 지금 그 신호등을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아, 나의 뜨거웠던 삶의 나날이여. 그 나날 속에 앞만 보고 달려나가던 철없던 바보를 다시 한 번 소환할 수 있게 해다오.

     

     

    글/사진 | 2017년 2월 24일, 서울 길목에서.

    촬영 카메라 | 후지 X100T

     

    오전 5시 48분, 어쩐지 찬 공기를 쐬어줘야 할 것 같아 잠깐 거리를 걸었다. 거리는 아직도 어둠에 차 있었고, 조용했다. 그 조용함 속에서 환경미화원은 빗자루질을 하는 중이었고, 횡단보도 앞에서는 중년 남자가 종이컵을 한 손으로 구기더니 휙 옆으로 던졌다. 그것도 모자라 카악, 소리를 내며 침을 뱉기까지 했다. 횡단보도에는 나를 포함해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몇몇의 사람이 있었다. 휴대폰 카톡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청년이나 나나, 또 다른 사람이나 말없이 그저 파란불이 바뀌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종이컵을 줍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용기가 없었다. 괜한 시비에 말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어디선가 몰려왔기도 했지만,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그 거북함을 차마 깨트리지 못했다는 것이... 계속 마음에 걸리는 아침이다. 기분을 전환시키려고 15분 산책을 했던 건데, 오히려 뭉개졌다.

     

    세상 어디에 걸어둬도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 되고 싶다. 화려한 액자를 장식할 필요조차 없는, 존재 가치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훌륭하고 싶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인생이지만 원래 붓칠이 거칠면 거친 만큼, 다양한 색이 겹쳐진 만큼, 들려줄 이야기도 많고 느끼게 하는 것도 많을 거라는 믿음. 어쩐지 오늘은 조금은 어두운 색을 골라 아랫부분을 문질러야 할 것만 같다. 오후에는 조금 더 밝은 색을 고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당신의 식습관을 알면, 당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혹시 끼니를 거르면서 일하고 계신가요? 간단하게 탄산음료와 빵으로 식사를 때우고 있지는 않나요? 음식은 영양 공급뿐만 아니라, 삶을 즐겁게 해주는 요소입니다. 즉, 몸은 물론 영혼도 살찌우게 한다는 겁니다. 오늘은 그냥 대충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자,라는 건 자기 자신을 천대하는 걸로 봐도 무방하다는군요. 우리 오늘은 조금이라도 특별한 걸 먹어보는 게 어떨까요? 비싸고 훌륭한 음식을 먹자는 건 아닙니다. 시간도 없고, 귀찮으니까 대충 먹자는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하루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보는 건 어떤가요? 떡볶이를 좋아하면, 떡볶이 한 접시를. 티라미슈를 좋아하면 티라미슈 한 조각을. 고기가 당긴다면 좋아하는 종류의 고기를. 냠냠하시고 몸과 영혼에 영양을 공급해주세요. 금요일 오전입니다. 오늘 하루도 즐겁게, 웃으면서 지내보아요.

     

    사진 | 2016년 12월 1일

     

    글/사진 | 2016년 12월 10일

     

    타인에 내게 베푸는 관심과 사랑만큼 기쁜 것이 또 있을까요? 서로가 서로의 어떤 점에 이끌려 다가오고, 마음을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게 된 것일까요? 습관처럼 메일함을 클릭했다가 도착한 따뜻한 선물에 가만히 미소 짓습니다. 선물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정신적인 풍요'를 이루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 밤입니다. 누군가는 내게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거나 떠나가는데, 또 다른 누군가는 제게 마음의 손짓을 보냅니다. 본격적인 한파의 시작이라는 뉴스를 봤고, 박근혜 대통령의 234, 56, 7의 탄핵 가결이란 세상 소식으로 오늘 하루가 그렇게 흘러가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제 하루를 예쁘게 매듭지어 주셨습니다. 오직 저만을 위한 사진이기에, 곱게 장식해두겠습니다.

     

    사진 | 2016년 11월 24일. 은행나무잎이 깔린 노오란 길.

    길은 늘 새롭다.

    길은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글/사진 | 2017년 2월 8일.

     

    힘 빠지는 일이 생길 때마다, 힘을 솟게 하는 인적 자원의 원천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을 겁니다.

    그중에서 우리들 몇몇은 교집합처럼 겹쳐진 것들이 있습니다.

    어느 한 노래를 들을 때마다 힘이 솟는다던가, 하는 것들은 극히 소소한 일이겠지요.

    건강하고 기분 좋은 힘을 냅시다.

    그리고 그런 긍정의 힘을 나눌 수 있으면 나눕시다.

    지구도 멈추지 않고 돌아 한 바퀴를 도는데,

    그 힘이라고 돌고 돌아 내게로 다시 안 오겠습니까?

    [모든 것은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말을 굉장히 맹신하는 저이기에 약간 강한 어조로 말해봅니다.

    힘내세요.

     

    글/사진 | 2017년 1월 4일, 용마지구대의 의사표현.

     

    세상엔 정말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주거용 공간을 위해 마련된 계단에 "용변"을 보는 사람의 심리는 대체 무얼까.

     

    글/사진 | 2016년 12월 23일.

     

    가끔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생각해본 적도 없는 '감각'으로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일상의 짙은 냄새만이 풍길 수밖에 없는 우리네의 흔한 골목길.

    우리는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가는 과정을 언제나 '무심하게 패스'한다.

    오직 [목적지]에 대한 경로를 통과한다는 생각에 하루에도 수없이 지나가는 '과정의 연속성'.

    우리는 그 과정을 제대로 즐기고 있을까?

    나는 그 과정을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

    [목적지에 대한 맹목적인 환상 때문에 놓치는 셀 수 없는 소중한 순간들을 오늘은 찬찬히 누려볼랍니다.]

     

    사진 | 2016년 11월 28일, 잠깐 바람 쐬는 중에 찰칵. 깜깜한 오전 5시 30분.

    글/사진 | 2016년 11월 2일, 양양에서 

     

    깊게 생각하지 않는 삶이어라.

    그저 바람이 불면 그에 몸을 흔드는 삶이어라.

    뿌리가 뽑혀나갈 듯 어제의 세찬 폭풍의 바람은 이미 기억에서 지운 삶이어라.

    한낮에 금방이라도 타들어갈 듯했던 작열하던 태양도 이미 잊은 삶이어라.

    하루의 끝에서 또 다른 내일에 대한 기대 역시 버린 삶이어라.

    그래, 그런 삶이어라.

    부디 지금의 내 삶도 강아지풀의 삶이어라.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무엇인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닌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진정으로 원했던 삶은 이런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솔직히 나 자신이 꿈꾸어왔던 삶이란 게 무엇이었는지 설명할 수가 없다. 갑자기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부유하는 물체 같은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다. 어느 틈에 '삶이란' 이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져도 비웃음 사지 않을 정도의 나이가 되고, 철없이 인생의 파도에 휩쓸려 도저히 내 힘으로는 도착할 수 없는 섬을 향해 헤엄쳤던 젊음의 날들이 어제에서 먼 과거로 분류됐다. 과거의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갈수록, 뇌수에 흐르는 괴로움이 범람한다. 무엇에 대한 괴로움이냐고 묻는 사람에게 내가 꺼내어 줄 것은 없다. 말할 수 없는 아픔이고, 어쩌면 한 번 꺼내면 내 온몸의 피가 전부 빠져나갈 것만 같은 두려움도 든다. 말로 꺼내면 괴로움이 하나의 형태로 자리 잡게 된다. 아마도 나의 괴로움은 양날의 칼의 형태일 것이다. 어느 쪽으로든 베일 수 있는 그런 날카로운 칼. 나도 상처 입고, 상대방도 상처받는, 피를 부르는 칼. 나는 그 칼을 품고 세상에서 도망쳤다. 사람에게서 도망쳤다. 가족에게서 도망쳤다. 그 누구하고도 마음을 섞고 싶지 않았다. 이해받고 싶지도 않았고, 관심받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남'이고, 결국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간다는 것을 알기에 되도록이면 가장 멀리 떠나고 싶었다. 나의 진정한 행복과 안식에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것을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가끔 내 생각을 말하면 남들은 '평범'을 입에 담으며 쓸데없는 생각으로 기운 빼지 말라고 한다. 엉뚱한 곳에 정신이 팔려 있는 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자의 도피일 뿐이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사람들. 사람들은 내가 흘린 눈물에 관심이 없고, 내가 생각한 것들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보는 하늘, 사람들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보다 새로 사고 싶은 옷을 고르는 것이 더 소중한 사람 속에서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보고, 생각하고, 느낀 점들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감정이란 것은 늘 그렇다. 자신의 안에서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는 거다. 그런 거대한 토네이도 감정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에 생긴 구멍 난 가슴을 메우기 위해 이야기하고, 사진을 찍고, 책을 읽고, 닥치는 대로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런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련다.

     

    글/사진 | 2016년 10월 21일.

     

    롱그린이 뭔지 모른다.

    콜라비는 재작년에 먹어봤다.

     

    글/사진 | 2016년 6월 7일

     

    지금까지 이토록 간절하고, 유머러스하며 귀엽기까지 한 홍보는 처음이다.

    (달콤한 세뇌, 간절한 주문)

    글/사진 | 2017년 2월.

     

    모든 일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법이다. 물론 시작되는 줄도 모르는 일도 있고, 끝이 났는지도 모르는 일도 있다. 가끔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일이나 관계가 시작되거나 끝이 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봄이면 노랗게 혹은 연분홍빛으로 다가오는 개나리나 진달래처럼, 여름이면 시원하게 쏟아지는 장마나 간담을 서늘케 하는 태풍처럼, 가을이면 논을 황금물결로 춤을 추게 하는 벼 이삭처럼, 겨울이면 장독대 위에 소복하게 쌓이는 새하얀 눈처럼 모든 것이 눈에 보이는.... 그렇게 자연스러우면서도 명확하게 모든 것들이 내 시야에 들어차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은 언제나 변하지만, 절대로 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 천성이 선하거나 악한 것에 상관없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어느 한쪽이 일방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어긋나고 만다. 가령 셈이 정확해야 하는 장사꾼처럼 내가 준 1의 감정에 상대도 꼭 그만큼의 1을 내게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러면서도 내가 준 1보다 더 높은 숫자의 것이 돌아왔을 때 그것이 마치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것. 자신보다 상대방이 감정을 주고받는 것에 대해서 충실치 못하다고 단정 짓는 것. 나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이 먼저 알아차려주기를 바라는 것 등등. 이런 모든 것들이 '일방적'이라는 범위 안에 속한다. 적어도 내게는.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가.

    나는 얼마나 교활한가.

    매일매일 바쁘다는 핑계로, 소중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인색하게 굴고 있는가를 생각하니 스스로가 민망해진다. 모든 상황을 자기합리화하는 데에 빠져서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며 나중에... '라는 마음을 어째서 당연시 여기고 있는 것일까. 내게 최우선 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내가 이 삶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생각을 하다 보면 점점 나와 세계가 분리된다. 내가, 내 삶의 나날들이 녹아들어 가야 마땅한 세계, 이 세상.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한번 빨래를 곱게 개듯이, 그렇게 마음을 개어 본다. '내가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어제의 나보다는.'라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면서.

     

    글/사진 | 2016년 9월 28일, 삼각지역 12번 출구에서.

    글/사진 | 2016년 6월, 독도에서만 잡힌다는 꽃새우. 예쁨.

     

    글/사진 | 2016년 6월, 부산에서

     

    전국호환교통카드를 가지고 있다면 상관없지만, 마그네틱 손상으로 어쩔 수 없이 티켓 발권함. 서울처럼 보증금 500원 포함인 교통카드가 발급될 줄 알았는데, 오?  어쩐지 이런 티켓은 처음이라서 정말로 1980년대로 회귀한 느낌.

     

    글/사진 2016년 9월 30일, 5호선 신금호역에서.

     

    난 내 눈을 의심했지. 망설일 틈조차 없었어. 문이 닫히기 직전의 전철에서 뛰어내리게 한 네가 비록 가짜라고 해도 상관없어. 내가 진짜라고 믿으면 그때부턴 모든 게 변하기 시작할 테니까.

     

    사진 | 2016년 9월 27일, 파문 (波紋).

     

    글/사진 | 2016년 9월 22일, 희망 미용실.

     

    어떤 단어 앞이라도 "희망"이라는 두 글자가 붙으면 마법이 시작된다. 무심코 길을 걷다 발견한 허름한 간판 속에서도  "희망"을 부르짖는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표정으로 살아가는 매일매일에 우리가 소중히 하고 꿈꿔야 할 "무엇"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일종의 계시인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쇼생크 탈출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 팀 로빈스가 열연한 앤디 듀프레인의 대사인데,

    [희망은 좋은 거에요. 아마도 가장 좋은 거겠죠. 그리고 좋은 건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희.망.

    希. 望.

    바랄 희, 바랄 망.

     

    사진 | 2016년 부산역에서 어느 여름날에.

     

    PLAYING IN WATER

    '아이가 아이였을 때 세상에 대한 주관도 습관도 없었다.

    책상다리를 하기도 하고 뛰어다니기도 하고

    사진 찍을 때도 억지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아이는 놀이에 열중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열중하는것은 일에 쫓길 뿐이다.

    - 피터 한트케의 어린아이의 노래 中에서'

     

    글/ 사진 | 2016년 10월 23일, 강원도 낙산 해변가의 아침.

     

    구름과 비의 막강함에 태양은 끝내 얼굴을 비추지 못했다.

    대신에 거친 바람과 파도가 부서져 바다 방울이 날아왔다.

    누군가는 찬 바람과 빗방울을 피해 아침 해변을 떠나가고,

    누군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순간'을 기록한다.

    그런 모습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차피 우리네 삶은 보거나, 보이거나 둘 중 하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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