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7일 하루 늦게 기록하기
- ME TIME
- 2022. 4. 18.
찬 바람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어지러운 생각들이 바람결에 떨쳐나가기를 바라면서 묵묵히 걸었다. 매번 다니던 길에서 조금 벗어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골목길을 헤쳐가면서 거리의 소음을 귀에 담았다. 한낮인데도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은 없었다. 한낮이라 없었던 것일까. 가끔씩 대문 안에서 나의 인기척에 짖어대는 강아지 몇 마리를 만난 것이 다였다.
사실, 산책하는 날을 잘못 택했다. 바람이 생각했던 것보다 거셌다. 강풍을 이기지 못하고 거리의 쓰레기들이 도로를 점령하고,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바퀴에 깔려 요란한 소리를 반복하고 있는 지경이었으니.
한참을 걸어 도착한 풍물시장. 주머니에는 5만 원짜리 지폐 달랑 한 장과 핸드폰. 등 뒤에는 백팩. 백팩 안에는 삼각대, 2개의 카메라 렌즈, 보조배터리, 수첩, 펜.
한 달 전인가 풍물시장에서 본 나무 도마를 사고 싶었다. 진짜 예쁘고 마음에 쏙 드는 도마였다. 하지만 도착해서 찾아보니 도마를 파는 아저씨는 없었다.
벼르고 있었다, 라고 말할 정도는 못되지만 적어도 도마 사러 가야지 하는 말은 5번 정도는 입에 담았었던 터라 괜히 서운했다.
돈도 있고, 도마도 넣어 가려고 백팩 메고 왔는데 이럴 수가. 모든 것이 준비됐다 싶어도 오늘 손에 넣을 수 있겠구나 했던 것을 도무지 손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이 인생입디다.
괜한 아쉬움에 주머니에 손을 넣어 5만원 지폐를 만지작만지작. 갑자기 이 5만원을 탕진하고 싶다는 마음이 번졌지만 풍물시장에서 내가 살 것은 없었다. 그래서 그 옆의 다이소로 들어가 연필깎이를 샀다. 3천원. 그리고 촬영용 휴대폰 거치대를 샀다. 1천원.
4천원을 계산하기 위해 5만원권 지폐를 한 장 내고, 4만 6천원을 거슬러 받았다. 그리고 뒤돌아서자마자 들려오는 목소리.
"언니, 만원짜리 있어? 나 한 장도 없어."
다이소 점원씨, 미안해요. 내가 오늘 지갑을 두고 와서 그래요. 도마 5만원짜리만 사서 집에 올 예정이었다오.
다이소에서 나와 집까지 돌아오는 길, 조금 추웠다. 하지만 동시에 몸에서 열이 났다. 집에 도착하니 저녁 7시 30분. 엄마가 왜 깜깜할 때까지 돌아다니느냐고 걱정의 목소리를 쏟아낸다. 암만 나이를 먹어도 엄마 눈에는 아기인가.
엄마 옆에서 잠시 뻗었는데, 침대 위에서 그대로 잠들었다. 8시 조금 넘어 침대에 기댔는데, 심지어 배가 고파 손에 약과를 하나 들고 있었다. 두입 먹고 맛이 왜 이렇게 없나 중얼거리면서 눈을 살짝 감았던 것 같은데, 손에 약과 들고 잤다고 한다. 엄마 눈엔 얘가 왜 이러나 싶었겠지. 그렇게 3시간 정도 후에 눈을 떴는데 내 손에 약과는 없었다.
약과를 좋아해서 집에 약과가 많았는데, 맛없다는 말 한마디에 내가 자는 동안 약과는 전부 엄마의 손에 처형당했다. 불쌍한 것들. 전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다니, 미안하구나.
내 방에 와서 이것저것 정리하다가 몸무게를 쟀는데, 오우, 2 킬로그램이 줄어 있었다. 운동의 효과란 참 대단하군? 하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니 나는 오늘 먹은 게 약과 3분의 1개와 커피가 전부였다.
아하, 운동의 효과가 아니었군.
오늘은 엄마에게 삼겹살 차슈 덮밥을 해먹겠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벌써 오후 4시 35분. 만사 귀찮다. 그런데 안 해 먹으면 엄마의 잔소리 폭격이 시작될 것이 뻔하다. 5시쯤에 슬슬 만들어 먹어야지. 집에 고기 좋아하는 사람도 없는데 왜 삼겹살이 30인분씩이나 있어야 할까. 어제 엄마가 전부 얼렸다. 오늘 내가 먹을 1인분의 삼겹살만 빼고. 괜히 꼭 해먹겠다고 큰소리쳤다. 어제 전부 얼리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지금 이 순간, 키보드를 탁탁 두드리며 하품 한 번.
역시 연필심은 뾰족해야 제맛.
얼핏 보고 잔멸치가 들어 있는 줄.
가성비 최고인 다이소 1천원 휴대폰 거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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