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4일 오전 11시 58분

    어제는 산책을 조금 다른 곳으로 다녀왔다. 집에서 나가기 전에 '낭만골목'을 검색했다. 춘천에 낭만골목이 있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우리 집에서 막연하게 멀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같은 효자동이질 않은가!

    길치인 나는 휴대폰 네이버 지도를 탐색했는데, 그 밑에 길 안내가 있었다. 그것도 음성 안내. 그러니까 네비처럼 길 안내를 해주는 시스템. 전에는 음성 안내를 보지 못했는데, 언제부터 생겼던 걸까.

    그래서 음성 안내를 ON, 이어폰을 끼고 집을 나섰다. 솔직히 조금 시끄럽긴 했다. 안내인이 너무 떠들어서. 00길에서 우회전하십시오, 001길에서 좌회전하십시오, 50미터 앞에서 좌회전하십시오..... 그런데 휴대폰 화면을 보지 않고 길 안내를 받을 수 있다는 건 꽤 편했다. 경로를 이탈하면 알아서 다시 길 안내를 해주니까.

    집에서 나올 땐 도착지점까지 25분 소요였는데, 내가 중간에 딴 길로 새서 이것저것 보느라 낭만 골목에 도착한 건 50분이나 지난 뒤였다.

    그리고 그 50분 동안... 비가 내렸다.

    우산 없이 나올 때부터 하늘은 요상했다. 바람이 거셌다. 혹시나 해서 야상 안에 겨울용 재킷을 숨겨 입고 나왔는데, 그런데도 추웠다. 그렇게 걸으면서 설마 비는 안 오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집을 나온 지 10분 만에 빗방울이 툭툭툭.

     

     

    그때부터 나의 고뇌는 시작되었다. 카메라가 비에 젖으면 안 되는데. 다시 집으로 갈까. 그런데 빗방울이 애매했다. 계속 내릴 것인지, 이러다 말 것인지 도통 알려주지 않는 빗방울. 잠깐 길 한가운데 서서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다. 그때, 언젠가 TV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비가 온다고 반드시 우산을 써야 된다는 생각은 없어요. 우산을 쓰는 게 귀찮기도 하지만, 비에 젖는다고 정말 큰일이 나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비가 내려도 그냥 걸어 다녀요.

    그래, 나도 그냥 걷자. 빗방울이 더 굵어지면 카메라는 가방 안에 넣자. 어차피 모자도 썼고 마스크도 썼어. 완전히 무장했는데 뭐 어때!

    그렇게 산책을 강행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시간 후, 비는 어느새 그쳤고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면 맛보지 못할 행복을 만끽했다.

     

     

    처음 만난 고양이가 내게로 다가와 몸을 비볐다.

    [고양이가 다가와 당신의 발밑에서 미소 짓는다면, 당신의 인생은 행복한 거예요]

    → 고양이 영화 다큐에 나오는 말

     

    멀리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도 만났다.

     

     

    길에 핀 잡초의 작은 잎사귀마저 하트로 보이는 행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비로 산책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 발짝 내디뎌야만 경험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것에 그만큼 다가갈 수 있다.] 이것이 어제의 내가 다시 한번 마음에 되새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라는 문장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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