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9일 오후 7시 41분
- ME TIME
- 2022. 8. 31.
| 역사를 태우다 : 까르르, 까르르
2018년 10월 29일 오후 2시. 쾌청.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단풍 보러 가고 싶으면 지금 가고 있으니까 준비하고 있어, 하고 밝은 목소리가 쏟아졌다. 전화를 끊고, 바로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준비하자, 준비. 날이 추울 테니 안에 히트텍을 입어야지, 그리고 기모 레깅스를 입고, 셔츠를 입고, 점프슈트를 입어야지. 다 입고 나니 목 아래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이었다.
잠시 후, 엄마가 나를 보더니 얼어 죽을까 봐 그렇게 껴입었느냐며 웃는다. 엄마 차를 타고 의암 둘레길을 드라이브 코스로 삼아 서면을 끼고 소양강 처녀상이 있는 곳까지 돌았다.
사람이 없어 더 좋은 둘레길.
단풍이 어여뻤다. 그리고 다시 차에 오르다가 내 실수로 휴대폰을 떨어트렸는데 아이폰7 후면 카메라가 파손됐다. 신기하게도 떨어졌는데 어떻게 카메라면 저렇게 빠개졌을까. 나는 카메라를 보고 핥핥핥,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엄마가 묻는다, 왜 웃냐고. 나는 대답했다. 실성해서 그렇다고.
후면 카메라가 저렇게 깨졌는데도 단 한 번의 '욕지거리' '성질머리'를 내지 않았다. 웃었다. 웃어넘겼다. 수년 전의 나 같았으면 깨졌다고 호들갑을 떨거나 아주 조금은 울적해졌을지도 모른다. 하다못해 '재수 없게' 하는 말이 툭 튀어나오고도 남았을 것이다. 지금 이렇게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건, 왜일까. 이런 마음의 변화는 무엇의 영향을 받게 된 것일까? 모른다. 하지만 이런 작은 물질적 파손으로 내 기분이 좌지우지되지 않아서 좋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지금 검색해보니 리퍼 수리비가 43만원이란다. 공식이 아닌 비공식 수리를 받으면 4~5만원이면 된다고. 그런데 카메라를 촬영해보니 기가 막히게 잘 된다. 카메라가 깨졌다는 흔적을 조금도 느낄 수 없는 결과물에 다시 웃는다. 엄마, 나 운이 되게 좋은 것 같아. 43만원 벌었어. 앉은 자리에서 뚝딱. 엄마는 내 논리가 비정상이라고 말하지만, 이건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상황을 어떻게 인지하고 수용하느냐의 문제일 뿐. 어차피 깨진 물품 앞에서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욕을 내뱉을 필요는 없다. 기분 좋게 엄마와 단풍 드라이브를 나왔고, 그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엄마랑 예쁜 공방 카페도 가서 친구처럼 카페 분위기를 즐겼다. 그리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6시에 약속이 있다고 다시 나갔고,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나는 6시가 넘어서야 엄마가 만들어 뒀던 닭도리탕을 먹기 위해 가스레인지의 불을 켰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새까맣게.
그리고... 탔다. 새까맣게.
엄마의 맛난 닭도리탕이 황천길로 떠났다. 다행히 가스불엔 타이머가 장착되어 있어서 저절로 꺼지긴 한다. 20분인데, 20분 동안 탄 냄비를 보며 다시 핥핥핥 웃었다. 오늘의 부제는 실성 말고는 답이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엄마가 이따 집에 오면 뭐라고 변명하지. 변명할 꺼리가 없다. 책을 읽다가 잊어 버렸다고 말하면 책 모서리로 꿀밤을 맞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말 기이하게도 좀 전에 내가 읽고 있는 책은 니시카와 미와의 '아주 긴 변명' 이었다.
아마 이 책처럼 아주 긴 변명을 늘어놓는다고 한다면, 아마 내 변명의 시작은 이 문장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 강렬한 태양빛을 바라보며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뱀파이어가 왜 햇빛에 타 죽는지 알 것 같아,라고. 그만큼 눈이 부셨다. 그리고 옆에서 한 박자 느리게, 운전대를 잡고 있던 엄마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엄마에겐 나의 진심 어린 표현이 하나의 개그였으리라. 웃으라고 던진 말은 아니었지만, 엄마가 웃으니 그걸로 됐지, 뭐. 네가 뱀파이어냐? 하는 엄마의 가벼운 핀잔은 금세 도로의 차들이 내는 엔진 소리에 파묻혔다. 그로부터 4시간 후, 이번엔 뱀파이어가 왜 불에 타 죽는지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일이 주방에서 일어났... 」
오늘의 눈부신 실적 : 휴대폰 후면 카메라를 빠갰고, 무쇠 냄비를 홀랑 태워 먹었다.
+덧붙이는 이야기.
냄비의 역사 : 내가 홀탕 태운 냄비를 보고 엄마가 해준 이야기. 이 냄비는 나의 100일 잔치에 큰맘 먹고 산 보물 냄비였다고 한다. 그 당시 나의 父는 국가공무원이었는데, 1979년의 한달 봉급이 7만 5천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냄비 4종 세트가 7만 2천원이었다고. 백일잔치에도 쓰고, 아주 오래 오래 쓸 요량으로 엄마는 거의 한달 봉급에 가까운 돈을 '할부'로 구입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10년 정도는 쓸 생각이었다고 했는데, 냄비가 정말 좋은 것인지, 아니면 엄마가 관리를 잘 한 것인지 냄비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집 주방의 터줏대감 노릇을 해왔다고 한다. 그런 냄비님을 내가 태웠다. 핥핥핥. 며칠 후면 내 생일인데, 기념 삼아 태웠느냐고 엄마도 웃는다. 엄마의 40년이 고스란히 담긴 역사적인 냄비를 딸내미가 활활 태워 먹었다. 엄마, 진짜 진짜 미안해.
엄마 왈,
살았어.
그리고 나를 향해
'나쁜 지지배' 라는 말을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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