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천사의 시 (Der Himmel über Berlin, 1987년작)

    베를린 천사의 시 

    원제 | Der Himmel über Berlin

    감독 : 빔 벤더스

    주연 : 브루노 간츠, 솔베이그 도마르틴, 오토 샌더

    1993년 5월 15일 한국개봉

     

     

    | 영화 줄거리

     

    천사 다미엘과 가서엘은 베를린에서 세계의 관찰자로 있다. 그들은 사람들의 삶에 개입할 수도 없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낼 수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심어줄 수 있다. 천사의 삶은 순전히 영적이며 관능적인 감각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없다. 필멸의 삶과 사람들의 지각 있는 세계에 참여하려는 다미엘의 욕망은 점점 솟구쳐 결국 자신의 불멸을 기꺼이 포기한다. 

     

     

    | 작품 소개

     

    이 작품은 미국 영화 비평가 포털 Rotten Tomatoes에서 49개의 리뷰를 기반으로 98%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국제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1988년에 독일 영화상 금상, 바이에른 영화상,  유럽영화상을 수상. 빔 벤더스는 1987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였으며 1988년 상파울루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유렵 텔레비전 관련 협회 아르테의 지상파 방송을 시작한 날인 1992년 9월 28일에 방영된 최초의 장편 영화였다. 

     

     

    동서고금의 영화 곳곳에 다양하게 등장하는 시(詩). 등장 인물에 의해서 문득 암송되거나 라스트 장면에서 인상적으로 인용되는 시. 고전에서 현대까지 영화 장면에서 몰래 (혹은 대담하게!) 숨쉬는 시를 찾아내면 기뻐하는 이들도 많을 터. 시의 해설과 함께 시와 영화와의 농밀한 관계를 풀어보는 재미를 누려보자. 

     

    그래서 준비한 작품은 제40회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1987년작 [베를린 천사의 시 (빔 벤더스 감독작). 

     

    | 페터 한트케의 ‘어린 시절의 노래’

     

    시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에게 베를린 천사의 시는 특별한 영화일 것이다. 굵은 펜으로 글자를 종이에 적는 클로즈업과 함께 천사를 연기하는 브루노 간츠의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 시가 낭송되는 첫머리 장면. 목소리는 담담하게 시를 읽는가 하면, 가끔 생각난 듯 마디를 붙여 동요를 부르는 가락이 되어 다시 평독으로 돌아간다. 목소리가 마치 목소리 그대로 적혀 가는 듯한 이 글귀에 모두가 한순간에 매료되어 이 영화를 몇 번이나 다시 보게 되는 관객도 있었을 것이다. 

     

    오스트리아 시인 페터 한트케의 ‘유년시절의 노래’. 서두에서 읽혀지는 건은 3번째이지만, 시는 영화 곳곳에서 같은 천사의 목소리에 의해 낭송되며 통주저음처럼 이어진다. 전체는 10개의 연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모든 연이 아이는 아이였을 때로 시작되는 시다. 이 말에 호응하듯 영화 속에서는 어린아이만이 천사의 모습을 본다. 마치 영원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어린아이에게만 남겨져 있는 것처럼. 

     

    201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이 시인의 이름은 전세계에 알려지게 됐다. 수상 당시, 한트케가 유고슬라비아에의 NATO 공습에 반대한 보스니아 분쟁시의 언동이 물의를 일으켰다. 공습에 반대하는 것은 세르비아인에 의한 대량학살을 용인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서방 언론이 일제히 수상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분쟁이나 전쟁이 언제나 뚜렷이 갈라진 적과 아군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님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우리가 목격하고 있다. 한트케 스스로 슬로베니아인 어머니를 두고 독일어를 사용한다. 문화도 피도 감정도 국경을 초월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지 않다. 그리고 NATO가 떨어뜨리든 러시아가 떨어뜨리든 폭탄은 폭탄. 그것이 떨어진 자리는 거리가 파괴되고 무고한 사람도 죽는다. 

     

     

    베를린 천사의 시에는 길거리에 길게 늘어선 시신들을 시민들이 확인하는 기록영상이 끼여 있다. 어린 아이나 잠든 듯한 얼굴의 유아 시체도 비친다. 누구 하나 펴오하의 서사시를 아직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 노인이 도서관에서 아우구스트 잔저의 사진집 20세기 인간들을 들먹이며 걱정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공습을 받아 벽에 의해 분단돼 무인지대가 된 포츠담 광장을 헤매는 노인을 영화는 뒤쫓는다. 여기가 포츠담 광장이란 말인가! 하고 노인은 마음속으로 말한다. 천사만이 그 소리를 듣는다. 

     

    천사들은 방관자다. 자살로 가는 젊은이를 막을 수도, 교통사고로 죽을 뻔한 남자를 구할 수도, 전쟁을 멈출 수도 없다. 천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살짝 만지는 것. 만져진 사람이 그 감촉을 눈치챌 가능성에 거는 것 뿐. 그것은 도서관에서 읽히기를 기다리는 책의 본연의 자세와 흡사하다. 

     

    도서관에 천사가 많이 사는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도서관에는 스스로 감각을 가다듬어 지식의 유산에서 뭔가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전세계 언어로 읽히고, 살아 있는 인간의 것이 되려는 말의 웅성거림이 넘친다. 도서관에선 역사가 살아 숨쉬니 천사들은 기뻐할지도 모른다. 

     

    빔 벤더스에게 있어서 ‘유년시절의 노래’는 자신의 고향 거리 베를린에서 찍는 영화에 어울리는 테마송이었을 것이다. 극작가로서도 저명한 페터 한트케는 시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벤더스의 의뢰를 받아 각본에도 참가했다. 

     

    유년시절의 노래를 인용 부분뿐 아니라 영화 전체를 통해 서사시처럼 엮어지는 것을 좋아하는 관객도 있다. 창세부터 지금까지를 계속 응시해온 천사들의 혼잣말.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말로 뱉어내지 않은 채 품고 있는 크고 작은 기쁨과 슬픔.

     

    영화의 막바지에 인간으로 몰락한 천사는 사랑하는 이를 향해 어린아이처럼 반갑게 베를린 장벽 옆을 걸어가 벽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 아름답다고 외친다. 분명 이것이야 말고 그 노인이 꿈꾸던 용감하고 씩씩한 전투사나 왕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아닌 평화로운 것만이 주인공인 이야기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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