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이즈 어프레이드 (2023년 7월 5일 한국 개봉)

    한국 포스터

     

    영화를 보고 난 후에야,
    비로소 포스터가 이해될 것이다. 

     

     

    일본 포스터

     

     

    보 이즈 어프레이드 작품 줄거리

     

    일상의 사소한 일에도 불안해하는 겁 많은 남자 보. 보는 어느 날, 방금 전까지 전화 통화를 하던 어머니가 갑자기 괴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머니 곁으로 달려가려고 아파트 현관을 나서자 그곳은 더 이상 평상시의 일상이 아니었다. 

     

    이것은 현실인가? 아니면 망상, 악몽인가? 차례차례 기묘하고 예상 밖의 사건이 일어나는 고향으로 가는 길은 어느새 세상을 철저히 집어삼키는 장대한 이야기로 변모해간다. 

     

    스포 주의 작품 해석) 작품 상세 줄거리

     

     

    지금 이 포스팅을 읽고 있다는 것은, 당신은 이미 보 이지 어프레이드를 감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너무 의미 불명하고  종잡을 수 없는 스토리 때문에 당신의 머릿속은 패닉에 빠져 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여러 차례 감상하여도 아직도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다는 당신을 위해 독단과 편견에 의한 고찰로 이 작품을 풀어나가보겠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제작에 있어서 감독 아리 애스터는 이런 코멘트를 남기고 있다. 

     

    📌  아리 애스터 감독 왈,

    10년 동안, 이 영화를 생각해 왔다. 우리가 이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장대한 영화다. 모든 세세한 부분에 디테일이 포함되어 있다. 열살짜리 아이에게 항우울제를 듬뿍 먹이고 쇼핑을 가게 한 것 같은 영화다. 관객들이 하나의 인생, 하나의 인간을 체험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훌륭한 것을 전달하는 것에 큰 책임을 느끼고 있다. 나는 인생을 경험하거나 심지어 사람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마치 유대인판 반지의 제왕 이야기처럼. 그렇다고 해도 주인공은 어머니 집에 갈 뿐이지만. 관객들이 패배자가 되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정말로 의미 불명의 코멘트이지만, 아리 애스터가 반지의 제왕을 인용하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왜냐하면, 이 판타지 소설은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 즉,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 또한 보(호아킨 피닉스)가 고향에 돌아올 때까지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보가 살고 있는 곳은 썩어 짓무른 시체가 길가에 나뒹굴고, 쉴 새 없이 총소리가 돌리고, 야크 속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 같은 광기의 바이올런스 시티.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장소다. 거기서 간신히 벗어나 어머니라는 절대적 안전지대로 가는 과정이 179분의 장척으로 묘사돼 있다. 

     

    사실 오프닝 크레디트부터 아리 애스터 는 주도면밀한 장치를 하고 있다. 제작 회사 A24와 ACCESS ENTERTAINMENT의 로고 뒤에 MW라고 하는 수수께끼의 로고가 비춰진다. 그 정체는 보의 어머니 모나 와서먼(패티 루폰)이 CEO를 맡는 가공의 기업 MW Industries. 모든 것은 어머니에 의해 통제된 이야기임이 서두부터 명시되어 있다. 

     

    주인공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거대 세트에서 생활하는 트루먼쇼(1998)와 마찬가지로, 보 또한 어머니에 의해 창조된 세계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지배하고 아들이 지배당하는 이야기. 굉장히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그러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 태내(자궁) 회귀의 이야기 | 

     

     

    이 작품의 중요한 키워드의 하나가 이다. 테라피스트(스티븐 매킨리 헨더슨)가 건네주는 신약은 반드시 물과 함께 마실 것이라고 다짐하며 그 물을 찾아 보는 목숨을 걸고 델리로 달려간다. 보에게 있어서 물이란 생명 유지, 정신 안정을 위해서 필요 불가결한 것. 하지만 그러면서도 욕조의 물에 빠질 뻔하거나 수영장에 시체가 떠 있거나 대홍수로 가족을 잃는 악몽을 꾸기도 한다. 일정한 임계값을 넘으면 물은 보에게 송곳니를 드러내고 덤벼든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어머니의 곁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이야기라고 규정한다면, 그것은 곧 태내 회귀의 이야기이며 그렇게 생각하면 물은 양수의 메타포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보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양수에 몸을 계속 담그는 영원한 아기. 그가 사는 매드 시티는 언제까지나 아들을 자신의 품에 간직하고 싶은 엄마가 만들어낸 세계인 동시에 뱃속 밖으로 배출돼버린 아기의 불안과 공포로 인해 만들어진 세계일지도 모른다. 

     

    보는 어머니로부터의 억압을 느끼면서도 완전히 외톨이가 되지 않는 동정 중년. 치료사가 어머니를 죽이고 싶은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즉각 부인한다. 어머니 죽이기 = 어머니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일 것이다. 보는 여자를 모르는 순진무구한 존재이며, 어머니는 매우 교모한 방식으로 보를 의존적인 유아로 만드는 데 성공하고 있다. 

     

    보는 자신의 왜곡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 작품은 거의 모든 장면이 보의 시점에서 그려져 있다. 세계에 대한 인식의 왜곡에 의해서 영상 그 자체가 초현실적인 악몽으로 변하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묘하게 일그러진 호아킨 피닉스의 바스트샷이 그려진 포스터. 그것은 굴절된 정신의 무자각성을 표상하는 듯하다. 이 영화는 왜곡된 심성에 의한 사이콜로지컬 오디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덧붙여서 보의 성의 Wasserman(와서먼) 으로 신화에 등장하는 물의 요정과 같은 이름이다. 그리고 어머니 모나가 사는 동네는 철자가 비슷한 Wasserton(와서턴)이다. 

     

     

    | 아버지의 정체 | 

     

    다친 보를 간호해 줬지만 점점 미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는 그레이스(에이미 라이언)와 로저(네이선 레인). 보는 그들의 집에서 뛰쳐나와 숲 속으로 도망친다. 이윽고 그는 젊은 임산부와 만나 이상한 코뮌으로 끌려간다. 거기서 목격하는 것은 마치 보 자신의 인생을 무대로 한 것 같은 이상한 연극이다. 

     

     

    여기서 영화는 더 이상한 양상을 띠기 시작해 불온한 애니메이션 파트에 돌입한다. 이 장면의 제작에는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영화 늑대의 집(2018)의 크리스토발 레온, 호아킨 코시냐가 참가했다. 처음부터 좀처럼 영문을 알 수 없는 영화지만 기어가 한 단계 더 올라가면서 혼미와 혼란의 광상곡이 흘러나온다. 

     

    동화처럼 회자되는 애니메이션 파트에서 보는 아들 세명의 아버지가 되어 있다. 그는 자신은 잠자리를 해본 적이 없다고 털어놓는다. 그러자 아들들은 그럼 어떻게 우리가 태어났지? 라는 당연한 물음을 던진다. 물론 보는 대답할 수 없다. 이 파트에서 그려지는 것은 여성=어머니가 개재하지 않는 또 하나의 보 이야기. 어머니로부터의 지배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어쩌면 실현되고 있었을지 모르는 패러렐 월드다. 

     

    그 동화와 병행 몽타주시키면서 그려지는 것이 소년 시절의 보가 어머니와 크루즈 여행을 떠나 일레인이라는 소녀를 만나는 기적의 이야기. 그녀는 보에게 키스를 하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건넨다. 분명 모나에게 그녀의 존재는 아들을 통제하는 데 있어서 성가신 침입자다. 이윽고 MW Industries에 입사한 일레인은 십수년만에 보와 재회하여 잠자리에 이른다. 그리고 조각처럼 움직이지 않게 되어 복상사하고 만다. 

     

     

    일레인을 일부러 자신의 회사에 끌어들인 것은 보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해 짜낸 모나의 계획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일레인은 보와 인연을 맺어 버렸고, 그 벌로 죽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들의 애정은 모두 어머니가 누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갖는 애정이 이 영화에서는 두렵고 지배적인 것으로 표출되고 있다. 그리고 아마 모나는 잠자리라는 행위 자체보다 여성만이 출산이라는 고통을 맛봐야 하는 일종의 저주 같은 것도 느끼고 있다. 그것은 보가 태어나는 오프닝 장면에도 현저하다. 어머니의 POV(주관시점) 샷으로 그려진 이 시퀀스에서는 아이를 낳은 기쁨이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 불안과 초조함. 두려움. 그 울굴한 생각은 아들 뿐만이 아니라 보의 아버지에게도 향한다. 

     

    모나가 지붕 아래 감금했던 아버지는 마치 거대한 거대한 남근 같은 모습을 한 괴물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진실일 것이다. 모나에게 그는 임신이라는 고통을 준 생식기와 같은 존재일 뿐이다. 보가 해후한 아버니는 어머니의 원념이 구현된 것이다. 

     

    | 최고의 해피엔드 |

     

     

    유전(2018), 미드소마(2019) 아리 애서트는 일관되게 가족이라는 저주를 그려왔다. 유전은 아리 애스터 자신이 자신의 가족에게 어떤 불행이 일어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를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말한 만큼 공포영화이자 꽤 헤비한 가족 붕괴 영화로 만들어졌고, 미드소마는 가족 동반자살이라는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주인공이 낯선 땅의 낯선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족을 찾기까지의 이야기였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 또한 노골적으로 가족의 저주... 라고 하는 것보다는 모친의 저주를 그린 작품이 되고 있다. 아리 애스터도 이 작품이 매우 개인적인 작품임을 인정하고 있다. 

     

    📌  아리 애스터 감독 왈, 

    이런 영화를 만들 때, 어떤 의미에서는 내 안의 것을 끌어내는 듯한 느낌이 든다. 특히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나는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내 영화 중에서는 가장 좋아하고, 가장 멀리까지 점프할 수 있었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3편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만드는 기쁨이 정말 있었다. 

     

     

    본인은 만드는 기쁨이라고 말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것은 모유를 먹지 않는다, 생일 선물로 같은 CD를 건넨다. 순종하지 않는다는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원망뿐. 보통의 감각이면 멘탈이 상당히 흔들리는 소재를 아리 애스터는 굳이 자신의 안쪽에서 끌어낸다. 모두가 경악했을 그 장면. 모나가 보에게 [너를 만드느라 한 고생을 알아?] 라고 말하는 바로 그 장면이다. 

     

    아들에 대한 애틋함과 분노는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재판 장면에서 폭발한다. 보가 아홉 살하고도 49일째가 되던 날, 어머니와 함께 장을 보러 간 그는 어쩐지 기둥의 그림자에 가려진다. 필사적으로 아들을 찾는 모나는 발이 걸려 무릎 인대를 다치지만 보는 엄마를 구하러 가지도 않는다. 

     

    15세 210일 째, 보는 남자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해 어머니의 욕실에 있던 속옷 냄새를 맡게 하고 원하는 것을 가져오게 했다. 모나는 자신에게 사랑을 쏟아주지 않는 아들을 고발하고, 엄숙한 심판을 배심원에게 구한다. 어쩌면 이것은 모두 아리 애스터 감독에게 일어난 진짜 사건이 아닐까? 그는 트라우마를 감추기는커녕 희희낙락하며 자신이 창조하는 이야기에 끼워 넣은 게 아닐까. 결코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다, 숨겨두고 싶다, 마음 한구석에 간직해 둔 부분을 필름에 새겨 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엄청난 멘탈리티다. 

     

     

    모터가 폭발해 보트가 전복하여 보는 익사한다. 그는 양수... 어머니의 뱃속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것은 모나에게 궁극의 행복일 것이다. 미드소마의 라스트 컷에서 대니가 보여주는 활짝 웃는 얼굴처럼 보는 것은 두려워도 최고의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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