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포스터
일본 포스터
주요 출연 배우
게르트 비슬러 역 / 울리히 뮈헤
국가보안부 (슈타지) 비밀경찰 심문관
게오르그 드레이만 역 / 제바스티안 코흐
극작가
크리스타 마리아 질란트 역 / 마르티나 게덱
여배우, 드라이만의 연인
타인의 삶 작품 줄거리
반체제 극작가 게오르크 드라이만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은 게르트 비슬러. 그는 드라이만의 집에 도청기를 설치하고 감시를 시작한다. 그가 듣게 된 것은 드라이만과 연인 크리스타의 사랑의 나날, 그리고 예술에 담긴 그들의 뜨거운 신념이었다. 그러나 크리스타에게는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브루노 헴프 장관의 정부라는 비밀이 있었다. 괴로워하는 크리스타, 그리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드라이만. 비슬러는 이 모든 것을 도청하며 자신의 삶이 텅 비어 있음을 깨닫기 시작한다.
콜걸을 불러보지만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고, 드라이만의 방에서 몰래 가져온 브레히트의 시집을 읽으며 더욱 허무함을 느낀다. 그러던 중, 드라이만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연출가 알베르트 예르스카가 자살한다. 드라이만은 동료들과 함께, 수많은 예술가들이 자살로 내몰리고 있는 동독의 실태를 서방에 알리려 한다. 이 움직임을 감지한 비슬러는 상사에게 보고를 하게 되는데...
📌 베를린 장벽 붕괴, 그리고 이후
영화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독일 통일 히우의 비슬러와 드라이만을 그려낸다. 민주화라는 해방이 이루어졌음에도 동독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현실이 남아 있었다. 슈타지의 감시 기록을 통해,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내통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 그것은 너무도 깊은 상처로 남았다. 그렇다고 국가 체제만을 탓할 수도 없다. 결국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구동독 사람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어떻게 재생하고, 다시 삶을 찾아가는지를 조명한다. 그 재생의 희미한 빛은 이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도 비춰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매우 훌륭한 작품이다. 꼭 보길 바란다.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 인터뷰
| 예술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
동서독이 통일을 이루기 5년 전, 철저한 감시 체제로 국민을 공포 속에 가둔 국가보안부 슈타지의 진실을 폭로하고, 자신이 감시하던 예술가 커플에게 점점 마음을 빼앗겨 가는 한 남자의 고뇌와 선택을 압도적인 드라마로 그려낸 작품, 타인의 삶.
이 작품은 유럽영화상 3개 부문을 비롯하여 수많은 영화상을 수상했으며,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최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이 영화로 2000년부터 기획하여 장편 영화 감독 데뷔를 한 플로리란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는 1973년 독일 쾰른 출생이다. 이토록 묵직하고 강렬한 걸작을 만들어낸 감독은 고풍스러운 귀족적인 이름을 가진 인물로 불과 33세의 나이에 첫 장편 영화로 이 작품을 완성했다. 그리고 감독의 키는 무려 2미터가 넘는다.
| 슈타지 감시 사회를 경험한 동독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
Q. 가족, 이웃, 연인조차도 밀고자가 될 수 있었던 시대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인간에 대한 신뢰가 쉽게 회복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구동독 지역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품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혹시 그들을 위한 정신적 케어가 이루어지고 있나요?
감독 : 좋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1945년, 나치 독재가 끝났을 당시와는 많이 다릅니다. 그때는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이 나치를 몰아내고, 독일인들이 나치 지배의 과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했습니다. 하지만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누구도 구동독 사람들에게 어떠한 케어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이 시절을 그저 잊어버리는 것을 더 선호했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나올 때도 코미디처럼 웃으며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제작된 영화들에서도 이처럼 고통받았던 사람들의 경험이 진지하게 다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번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울리히 뮈헤의 사례를 들어볼까요?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슈타지의 엄격한 감시를 받았고, 군 복무 중에는 베를린 장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때 그는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을 사살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상관들은 그에게 사람을 쏘지 않으면 배우가 될 수 없다고 말했지만, 그는 오히려 만약 자신이 사람을 쏘게 된다면 배우가 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운이 좋게도 그가 근무하는 동안 눈앞에서 장벽을 넘으려 한 사람은 없었고, 결국 그는 배우의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 후 그는 자신이 속했던 국가에서 가까운 동료 4명이 사실은 그를 감시하기 위해 배우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중 2명의 정체는 밝혀졌지만, 나머지 2명은 아직도 코드네임밖에 모릅니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1993년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감시에 관한 공식 문서를 열람하는 과정에서 6년간 함께 살았던 전처 (배우 제니 그롤만)가 결혼 생활 내내 슈타지의 정보원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파일은 무려 500페이지에 달했으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문서에는 그녀가 절대 남편에게 들키면 안 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내용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습니다.
이처럼, 구동독에서는 이런 배신 행위가 흔한 일이었습니다. 참고로 그와 전처 사이에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고, 그녀도 배우가 되었습니다. 이름은 안나 마리아 뮈헤이며, 영화에도 출연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바탕으로 한 권의 책을 출간하며, 책 속 인터뷰에서 울리히 뮈헤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과거 슈타지 협력자였으며, 현재 독일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인 한 타락한 변호사가 울리히가 한 인터뷰 내용에 대해 그와 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 변호사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500페이지나 되는 문서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조작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는가.
결국 우리는 그것이 진짜라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울리히는 패소하여 영화 출연료보다 더 많은 금액을 변호사에게 배상해야 했습니다. 정말 불행한 일이었죠. 그러나 이 사건이야말로 현재 독일이 과거 동독의 진실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마치 그것은 어쩌면 없었던 일일지도 모른다. 단순한 악몽이었을지도 모른다라며 사람들이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이죠. 하짐나 그 과거는 분명히 실재했던 현실입니다.
Q. 감시당한 경험이 있는 분들과 대화해 본 후,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감독 : 감시를 경험한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죠.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그들이 감시당한 경험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저는 그들을 마주한 순간 바로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깊은 슬픔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도 매우 강렬한 경험이었습니다.
Q. 울리히 뮈헤가 감시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캐스팅된 건가요? 그에게 받은 조언은 있었는지, 그리고 이런 경험을 가진 배우들이 많았나요?
감독 : 사실 울리히를 캐스팅할 당시에는 그의 그런 경험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방금 전에 그의 경험을 예로 든 것은 불행하게도 이런 일이 당시에는 너무나 흔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영화를 준비하며 리서치를 하면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그 중에는 그의 경험을 뛰어넘는 충격적인 사례들도 있었습니다.
당시 유명한 예술가들은 모두 엄격한 감시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울리히만 특별했던 것이 아니라 시대 자체가 그러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개인적인 경험이 각본에 형향을 주었느냐 하면, 대사나 스토리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영향을 미쳤다고 확신합니다. 슈타지라는 감시 시스템은 편집증에서 비롯된 조직이었고, 그들은 공포를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해 감시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울리히는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내면적인 감정은 분명 영화 속에서 반영되었을 것이고, 관객들에게도 그 감정이 전해지길 바랍니다.
Q. 슈타지에는 과거 게슈타포나 SS(나치 친위대 정보부) 출신들이 대거 채용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실제로 그랬나요?
감독 : 실제로는 슈타지에서 과거 나치 관계자를 그렇게 많이 채용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슈타지가 원하는 인재상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죠. 나치는 예를 들면 노파의 얼굴을 주저없이 가격할 수 있는 잔혹하고 난폭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모집했습니다. 반면, 슈타지에는 심리적인 스킬이 더 요구되었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지적인 사람들이 주로 채용되었죠. 물론 그들이 한 일도 폭력에 해당하지만, 그 형태가 매우 달랐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잘못된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Q. 영화화가 실현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동안 비슷한 작품이 발표될까 봐 걱정되지는 않았나요?
감독 : 진정으로 개인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비슷한 작품이 나올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배우가 나와 닮은 외모를 가진 사람이 있는데 어쩌지? 라고 걱정하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결국 나만의 독창적인 시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Q. 감독님께서는 어떻게 독창적인 시각을 작품에 담아내셨다고 생각하시나요?
감독 : 어떤 작품이든, 어떤 주제를 다루든 각본가이자 감독으로서 최대한 개인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이라는 것은 곧 나만의 시각과 독창적인 관점을 반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번 작품을 집필할 때도, 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각 캐릭터를 만들어갔습니다.
잔혹한 슈타지의 심문관이 어떤 행동을 할지 고민할 때, 저는 단순히 그가 어떻게 잔혹하게 심문할 것인가를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내가 만약 심문을 해야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개인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이것은 선이다, 이것은 악이다라고 처음부터 단정 짓지 않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아무리 악행을 저지른 인물이라도, 그들을 단순히 악인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관객분들께서 제 작품을 보며 느껴주셨으면 하는 것은 제가 각 캐릭터에게 얼마나 깊은 공감과 애정을 쏟았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생각하는 개인적인 영화 만들기 방식입니다.
Q. 독일에서는 어떤 점이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고 생각하시나요?
감독 : 이 작품은 독일 역사에서 한 시대의 어두운 측면을 그린 영화이지만, 아마도 어떤 사람들의 행위를 악이라고 단정 짓고 비난하지 않았던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 시대에 일어났던 일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영화 자체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저는 그렇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또 하나, 당시를 경험했던 분들이 이 영화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했다는 점도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정말 멋진 일이었는데, 영화가 개봉된 직후 저는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몹시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구동독의 작가, 예술가 등 지식인들이 TV 프로그램과 신문을 통해 이 영화에는 우리의 과거 삶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그 사실을 매우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지지하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Q. 브레히트의 시집과 선한 사람들을 위한 소나타라는 아름다운 곡을 통해 냉철했던 주인공이 점차 인간성을 찾아갔습니다. 감독님께서는 인생관을 바꿀 만큼 강한 영향을 준 곡을 만난 적이 있으신가요?
감독 : 음악은 아니지만, 제 경우에는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만약 비슬러가 영화를 보고 변화했다면 어땠을까요? 그건 너무 극적이지 않겠죠? (웃음) 그래서 음악을 선택한 겁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예술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가능한 한 사람들에게 강한 영향을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단순히 2시간 동안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만을 만든다면 솔직히 영화 제작이 너무 힘든 일이기 때문에 5년을 투자해서 겨우 2시간 동안만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끝난다면, 그건 너무나 비효율적인 일이겠죠. 물론 오락성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관객들도 자신이 돈을 내고 영화를 보는 만큼, 내용이 너무 가벼우면 손해 봤다고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기억에 남는 작품을 만난다면 영화 티켓값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늘 생각합니다.
Q. 선한 사람들을 위한 소나타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감독 : 이번 작품에서 음악을 맡아주신 가브리엘 야레드가 작곡한 곡입니다. 아마도 아실지 모르겠지만, 보통 작곡가는 영화를 본 후 음악을 작곡합니다. 그런데 그는 촬영 전에 미리 곡을 제공하는 스타일의 작곡가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영화에 음악을 덧입히는 것은 어쩌면 냉소적인 행위일 수 있다.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이미 음악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음악을 덧씌우는 것이 과연 필요한가? 그런 그에게 곡을 의뢰할 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1933년, 당신에게 히틀러와 단 2분 동안 마주할 기회가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말을 주고받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만든 곡을 히틀러에게 들려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곡이 히틀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그가 실제로 저지른 일들을 막을 수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신이라면, 그 순간에 어떤 곡을 들려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곡이 바로 선한 사람들을 위한 소나타입니다.
어쩌면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를 듣고 나면, 나는 혁명을 끝까지 해낼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 곡을 듣지 않기로 했다. 예술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만큼 강력합니다. 만약, 한 인종차별주의 성향을 가진 젊은이가 있다면 저는 그에게 덴젤 워싱턴이 주연한 리멤버 타이탄(2001)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영화를 보고도 여전히 인종차별주의자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 타인의 삶
그냘, 들려온 한 곡의 소나타... 그것은 자유를 노래하고 사랑을 표현하며,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감정을 전하는 음악이었다. 그 곡을 들었을 때, 그는 삶이 주는 기쁨에 몸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1984년, 냉전 시대의 동베를린. 동독 국가보안부 요원 비슬러는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이자 배우인 크리스타가 반체제 인사라는 증거를 확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승진이 보장된 상황. 그러나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감시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변화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국가를 절대적으로 믿고 충성하며 살아온 비슬러는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세계에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자유로운 사상과 예술, 문학, 삶, 그리고 사랑에 점점 더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는 지금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삶의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를 감싸던 견고한 장벽이 무너지고, 그의 세계는 저 벽 너머, 더 넓은 곳으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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