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인의 사회 (Dead Poets Society, 1990년 5월 19일 한국 개봉)

    한국 포스터

     

     

    죽은 시인의 사회 작품 소개

     

    30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명작. 명문 기숙사제 남자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청춘 학원 영화로, 제6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1989년에 개봉한 죽은 시인의 사회는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명작으로 남아 있다. 영화를 연출한 감독은 트루먼 쇼 감독이기도 한 피터 위어. 출연진으로는 굿 윌 헌팅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로빈 윌리엄스와 1990년대에 미남 배우로 인기를 끌었던 에단 호크가 학생 중 한명으로 등장하는 점도 놓칠 수 없는 포인트다.

     

     

     

     

    죽은 시인의 사회 줄거리 

     

    1959년, 미국 버몬트주의 명문 기숙사제 남자고등학교 웰튼 아카데미에 이 학교의 졸업생이자 새로운 영문학 교사인 존 키팅(로빈 윌리엄스)이 부임한다. 보수적인 교풍을 지닌 학교에서 엄격한 규율 아래 생활하는 학생들에게 그는 교과서를 찢어버리게 하고, 책상이 아닌 책상 위에 올라가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등 기존의 교육 방식과는 전혀 다른 파격적인 수업을 진행한다. 

     

     

    그의 색다른 지도 방식은 점차 학생들을 매료시키고, 그들은 새로운 사고방식과 자유로운 삶의 방식에 눈을 뜨게 된다. 특히 닐을 비롯한 몇몇 학생들은 과거 키팅이 학창 시절 조직했던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를 부활시키고, 주어진 틀 속에서 사는 삶이 아닌 자유로운 삶에 대한 동경을 키워나간다. 그러나 그들의 변화는 곧 커다란 갈등을 불어오게 되고, 한 학생이 엄격한 아버지와 갈등을 빚으며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Carpe Diem (카르페디엠)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그가 남긴 이 메시지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각본가 톰 슐만 인터뷰

     

    Q. 이 영화는 당신의 학창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고 들었다. 1989년 개봉 이후, 영화의 스토리에 대한 감정이나 생각이 변한 점이 있나? 지금도 여전히 공감하고 있나?

     

    슐먼 : 이 영화는 젊음과 젊은 마음을 지닌다는 것, 그리고 그 시기의 불안정함을 잘 담아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공감할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사상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굳게 믿고 있으며, 우리는 최대한 대담하고 창의적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가장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끼는 캐릭터는 누구인가?

     

    슐먼 : 토드 (에단 호크)와 가장 비슷하다. 나도 고등학교 때부터 20대 중반까지 말수 적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무서워하는 소심한 아이였다. 예전에 흔히 들었던 작법 조언들이 있다. '자신이 아는 것을 써라' '글을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을 정도로 간절하지 않다면 쓰지 마라' 웃긴 건, 이 두 가지 조언이 모두 사실이라는 점이다. 

     

     

    Q. 본인의 삶과 작품 속에서 일관된 주제의식을 의식적으로 반영하나? 아니면 작품과 개인적인 관점을 분리하려고 하나?

     

    슐먼 : 처음 이야기를 쓰기 시작할 때는 내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 잘 모를 때가 많다. 하지만 글을 계속 써 나가다 보면, 내가 선택한 주제나 캐릭터 등을 통해 내면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각본 속 주인공이 겪는 내면적 여정과 작가인 내가 겪는 내면적 여정은 맞물리게 된다. 

     

    Q. 각본을 쓰기 전에 전체적인 개요를 작성한다고 들었다. 얼마나 자세하게 만들었나?

     

    슐먼 : 내가 기억하기로 죽은 시인의 사회 개요는 130페이지가 넘었다. 하지만 보통은 30~50페이지 정도의 개요가 가장 적당한 것 같다. 즉, 이야기의 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할 만큼 충분히 길어야 하지만, 동시에 집필 과정에서 생길 뜻밖의 발견이나 우연한 영감을 수용할 여지는 남겨둬야 한다. 

     

    에단 호크, 죽은 시인의 사회와 감독 피터 위어가 그의 삶에 미친 영향

     

     

     

    골든 글로브에 두 번이나 노미네이트된 배우 에단 호크는 1997년부터 2010년에 걸쳐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와 진행한 여러 인터뷰에서 18세에 죽은 시인의 사회에 출연한 경험과 피터 위어 감독과 함께 작업한 기억을 자주 이야기했다. 그는 폴 뉴먼과 조앤 우드워드에 대한 다큐멘터리 The Last Movie Stars(2002)를 연출했으며, 영화와 예술에 대한 그의 철학을 형성하는데 있어 죽은 시인의 사회와 피터 위어의 영향이 지대했다고 밝혔다. 

     

    에단 호크는 13세 때, 조 단테 감독의 영화 익스플로러(1985)를 통해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그의 어머니의 바람에 따라 다시 학업으로 돌아갔다. 

     

    에단 호크 : 친구가 오디션을 본다고 해서 그냥 장난삼아 따라갔다. 그런데 조 단체 감독님이 나를 흥미롭게 여겼고, 덜컥 첫 역할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그 영화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고, 어머니는 반드시 고등학교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셨다. 사실 어머니는 내가 정말 배역을 따낼 거라고 생각도 못 했기 때문에 오디션을 보게 놔두신 거였다.

     

    당시 나와 함께 촬영했던 리버 피닉스도 13살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의 대부분을 배우로 살아오게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만약 다른 일을 시도해 보지 않는다면 내 삶이 덜 충만한 것이 될 거라는 두려움이 들었다. 그래서 20살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고, 상대에게 거절당해 미쳐가는 이야기를 담은 짧은 소설을 썼다. 그렇게 13살부터 글을 써 왔고, 첫 번째 소설인 The Hottest State를 1986년에 집필했다. 당시에는 출판하려다가 겁이 나서 완전히 다시 쓴 후에 1996년에야 출간했다. 

     

    에단 호크는 익스플로러에서 함께 연기했던 리버 피닉스가 1993년, 23세의 나이에 요절한 사건에 대해 깊은 슬픔을 표했다. 

     

    에단 호크 : 요즘 젊은 문화에서는 마치 마약이 미화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마약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역시 과도하게 찬양되는 것 같다. 특히 15살 아이들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게 지혜도 영적 성숙도 없는 사람이다.

     

    나는 마약을 남용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리버가 죽었을 때 그 충격이 내 주변 공동체 전체에 파문을 일으켰다. 선셋 스트립에서 헤로인에 취해 죽는 건 시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가 그런 식으로 생을 마감한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는 정말 젊고 순수한 예술가였다. 그의 삶이 그렇게 끝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직도 생각한다. 

     

    에단 호크는 첫 영화 익스플로러가 결국 그를 죽은 시인의 사회로 이끌었다고 밝혔다.

     

    에단 호크 : 대학에 갔을 때 익스플로러에서 나를 기억한 에이전트가 죽은 시인의 사회에 젊은 배우들이 많이 필요한데 오디션을 보라고 제안했다. 당시 나는 대학 생활이 너무 힘들었고, 어머니도 더 이상 내 삶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오디션을 보러 갔고, 결국 배역을 따냈다. 그날 밤 너무 긴장돼서 밤을 새웠던 기억이 난다. 이후 오디션 영상을 보았는데, 내 머리카락이 너무 길어서 얼굴을 거의 가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피터 위어 감독이 내게서 뭔가를 발견했고, 그것이 내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나는 18살짜리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였다. 그런데 이 영화 덕분에 수많은 기회가 열렸고, 그것이 내게 주어진 큰 선물이라는 걸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영화를 찍기 위해 자퇴한 후, 한동안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영문학을 전공했고, 그 과정에서 첫 번째 소설을 쓰고 말라파르테 극단을 운영할 생각을 하게 됐다. 이후 내가 다양한 도전을 해 온 것은 스스로를 교육하고 책임지는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에단 호크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학생들에게 했던 역할을, 피터 위어가 자신들에게 해줬다고 말했다. 

     

    에단 호크 : 나는 아직도 피터 위어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그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다. 피터 위어는 우리에게 자신과 타인에게 최고의 것을 기대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스토리를 전하고, 예술이 가져야 할 순수한 가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솔직히 말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돈을 벌고, 영향력을 과시하려고만 하지 진짜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피터 위어 같은 사람을 만나면 그는 진정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가슴에 사랑을 품고 있으며 그 방향이 올바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순간은 흔하지 않지만, 그럴 때야말로 특별한 경험이 된다. 그가 내게 설정해 준 기준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도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지켜나가고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 제작 & 배우들의 에피소드

     

    죽은 시인의 사회는 단순한 학원 영화가 아니라 촬영 과정에서 배우들과 제작진이 겪은 특별한 경험으로 더욱 깊은 의미를 가진 작품이다. 피터 위어 감독은 영화 촬영 전, 주연 배우들이 실제로 기숙사 생활을 하도록 했다. 에단 호크 (토드 역), 로버트 숀 레너드 (닐 역) 등 학생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함께 기숙사에서 지내며 유대감을 쌓았다. 리허설도 영화 촬영 방식이 아니라 연극처럼 전체 장면을 쭉 연기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여 자연스럽게 학생들 간의 케미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촬영 순서가 편집 순서와 다르지만, 감독은 영화의 흐름과 배우들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변화할 수 있도록, 가능한한 이야기 순서대로 촬영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성장이 더욱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당시 18세였던 에단 호크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가진 로빈 윌리엄스(키팅 선생님 역)와 친해지기를 꺼려했다. 이유는 영화 속에서 토드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이기 때문에 현실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촬영이 끝난 후, 로빈 윌리엄스가 직접 에이전트를 소개해주며, 에단 호크가 본격적으로 배우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찢게 하는 장면은 대본에 있었지만, 로빈 윌리엄스가 교과서 내용을 읽으며 이건 다 헛소리야! 라고 외치는 장면은 완전히 애드리브였다. 감독과 제작진도 이 장면이 너무 마음에 들어 그대로 사용했다. 유명한 오 캡틴, 나의 캡틴! 장면에서 학생들이 책상 위에 올라가 키팅 선생님을 배웅하는 장면에서는 처음에는 몇 명의 학생들만 올라가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에 감동한 배우들이 즉흥적으로 모두 책상 위로 올라갔다. 감독은 이 장면의 감정이 너무나 자연스럽다고 판단해 그대로 사용했다. 

     

     

    영화 제작 초기, 닐 페리 역할에 리버 피닉스가 고려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리버 피닉스는 당시 최고의 청춘 스타였고, 스탠 바이 미(1986) 등에서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제작진은 덜 알려진 신예 배우를 기용하는 것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데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고, 결국 로버트 숀 레너드가 캐스팅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리버 피닉스와 에단 호크가 1985년 영화 익스플로러에서 함께 연기한 친구 사이였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이미 감동적인 결말을 가지고 있지만, 초기 각본에서는 닐의 죽음 이후, 키팅 선생님이 더 심각한 처벌을 받는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감독과 제작진은 이 영화가 지나치게 무겁거나 어두운 분위기가 되지 않도록 현재의 결말로 조정했다. 

     

     

    Carpe Diem, Seize the day! (카르페디엠, 오늘을 살아라!) 이 유명한 대사는 단순한 영화 속 대사가 아니라 실제로 로빈 윌리엄스가 삶에서 중요하게 여긴 철학 중 하나였다. 이 대사 이후에도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패러디되거나 오마주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명대사로 남게 되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가 불러오는 학창 시절의 기억

     

    • 첫사랑에 열중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학원 로맨스
    • 동아리 활동에 몰입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스포츠 드라마
    • 인생에 영향을 준 스승을 떠올리게 하는 스토리

    어떤 영화는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바로 그런 영화다. 1989년 개봉 당시, 이 영화는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북미에서 약 1억 달러, 전 세계적으로 2억 달러 이상의 흥행 수익을 기록했다. 

     

    이 영화가 오랜 시간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관객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준 스승을 떠올리며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감동은 관객뿐만 아니라 이 영화를 만든 제작진과 배우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 

     

    교과서를 찢으라는 전통을 거부한 가르침! 영화 속에서 키팅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기존의 교육 방식을 벗어나도록 유도한다. 그중 하나가 프리차드 교수의 교과서를 찢어버리라는 장면이다. 그 교과서는 시를 분석하는 공식적인 방법을 설명하는 책이었다. 하지만 키팅은 시는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며 학생들에게 책을 찢게 하며 틀에 갇히지 말라고 가르친다. 이 장면은 학생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지만, 자유로운 사고를 시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또 다른 명장면 중 하나는 키팅이 갑자기 책상 위로 올라가는 장면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내가 이렇게 책상 위에 서는 이유는, 늘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세상도 이렇게 다르게 보이지 않느냐?] 학생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점차 그의 가르침에 동화되어 하나둘씩 책상 위에 올라가 새로운 시각을 경험한다. 키팅은 학생들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레밍(집단적으로 행동하는 설치류)처럼 살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길 원했다. 

     

    키팅은 학생들을 교실에 가두지 않고, 학교 운동장으로 데려가 행진을 하게 하거나, 축구를 하게 하며 교육을 진행했다. 이는 단순한 암기식 교육이 아닌, 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배움을 강조한 것이었다. 키팅의 교육 방식은 당시 보수적인 웰튼 아카데미의 전통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렇다면 키팅의 실제 모델은 누구일까? 존 키팅 선생님의 캐릭터는 실존 인물은 사무엘 피커링 교수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톰 슐먼 각본가는 실제로 피커링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그의 강의 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어 키팅 선생님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피커링 교수 역시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자유로운 가르침을 중시하는 교육자였다. 


    2014년, 로빈 윌리엄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많은 신문들은 그의 부고 기사에서 한 문장을 인용했다. 그것은 바로 O Captain! My Captain! 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학생들이 키팅 선생님을 향해 외쳤던 문장으로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한 캐릭터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깊은 영향을 남겼는지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영화 속 장면에서 학생들이 학생들이 실제 교과서를 찢었는지 궁금해하는 팬들이 많았다. 하지만 촬영 당시에는 교과서를 찢는 장면을 여러 번 찍어야 했기 때문에, 가짜로 만든 소품 교과서를 사용했다고 한다. 

     

    키팅 선생님의 수업이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단순히 독특한 가르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말은 개성을 억누르는 엄격한 학교 생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찾도록 이끌었다. 그 핵심이 되는 단어가 바로 Carpe Diem. 라틴어로 오늘을 잡아라, 즉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라는 의미다. 이 유명한 대사는 일본에서는 영화의 제목으로 그대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덧붙인다.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너희들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어라. 

     

    이 대사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핵심 메시지를 관통하는 중요한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키팅 가르침을 통해 학생들은 점차 용기를 내어 행동하게 되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존 키팅을 연기한 로빈 윌리엄스는 이 역할에 강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고등학교 시절에 키팅 같은 선생님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로빈 윌리엄스는 샌프란시스코 북쪽에 있는 레드우드 고등학교 출신으로 당시 엄격한 교육 방식을 경험했다. 그가 현실에서 만나지 못했던 이상적인 스승을 연기를 통해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피터 위어 감독 역시 자신의 학창 시절 경험을 영화 속에 반영했다. 그는 호주 시드니에 있는 전통 있는 남학생 기숙학교 스코츠 칼리지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영화 속 교복 디자인과 수업 방식 역시, 그가 기억하는 학창 시절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촬영 과정에서도 위어 감독은 자신이 학생 시절 경험했던 교칙과 분위기를 영화 속에 생생하게 담으려 노력했다. 

     

    이후에 죽은 시인의 사회가 연극 무대에서 재해석되었을 때, 첫 공연 장소로 선정된 곳이 피터 위어 감독의 모교 스코츠 칼리지였다. 개막 공연 당시, 피터 위어 감독이 특별 초청되었고, 그는 개막 연설에서 영화 제작 과정과 학창 시절에 대한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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